서비스 조급증과 "피아 식별"

2010.06.22 01:16
어떤 CEO가 이런 말을 해주셨다. 사업을 하다보면, 밑빠진 독에 물붓는 느낌이 들던 시기가 있었노라고. 언제까지 이 밑빠진 독에 물을 부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붓는 순간 어느 순간 독에 물이 차오르고 그 다음 그림이 그려지더라는...

최근에 일련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열에 아홉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도 전에, 한번 부어보고 물이 쫘아악 빠져나가는 순간 다른 고민을 한다. 심지어 오픈한 지 사흘만에, "아 이건 아닌가?"라는 반문을 내놓기도 한다. 전략적인 고민이 그렇게 쉽게 번복되는 순간, 서비스는 산으로 가고 있다.

서비스가 영글어서, 무언가 빛을 발하기까지 빠르면 1년, 길면 2년까지도 걸리기도하고, 종래에 없던 비즈니스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문제는 초기부터 이런 베팅이 서로 공유되지 않으면, 사업담당자는 즉각적인 효과를 원하고 그렇지 않은 결과물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수정을 가하게 되고, 결국 서비스는 산으로 가고 고객은 무언가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하고 서비스가 엉망이 되어 버린다.

사업 담당자와 기획/개발이 분리되는 순간

기획과 개발, 사업 담당자가 강하게 드라이브되는 조직에서 일하다가, 새로운 조직에서 느낀 그것은 확연히 다르다. 사업담당자의 요구사항에 맞추어 외부용역을 해주는 느낌이 강하다. 아니 심지어 그 사람이 그려준대로 그려주는 것이 속편해지기 시작했다. 아 이래서 다른 오래된 기업들이 기획자와 개발자가 포지셔닝 되는 구나 싶을 정도의 느낌을 갖게 된다.

철저하게 서로의 Role이 분리되는 순간, 서로의 고민은 차원을 달리하게 된다. 기획자는 일종의 사업담당자의 voice를 개발자가 알아듣고, 디자이너가 알아듣게 해주는 커뮤니케이터 정도의 역할에 머물게 된다. 개발자는 이 플랫폼이 어떻게 보다 확장하고, 변형되고 유용하게 만들어지게 고민하기 보다 즉흥적인 니즈에 맞춰 예외처리를 하여 개발해주게 된다. 디자이너는 점점 반복적이고, 찍어내듯한 일을 하게 된다. 외부용역과 다를 바 없다.

"내 서비스에 대한 고민"

e쿠폰 사업을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사업 담당자가 계속 플랫폼이나 서비스 프로세스에 대해서 고민하는 순간 그 사업은 계속 고쳐가기만 하게 된다. 이런 영업을 해보니, 이게 필요해. 이런 고객의 니즈에 맞춰, 이걸 고쳐야 해. 이런 식으로 고쳐나가기만 한 6개월 가량을 방황했던 것 같다. 결론은, 처음 만들어진 모습대로, 사업을 집중해서 해 나갔더라면 그 방황이 훨씬 짧았을 것이고 성공 역시 빨랐을 것이다. 모델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적어도 서비스 조급증이 만들어낸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서비스를 하면서 일희일비하거나, 조령모개하는 형태의 즉흥적인 대응은 서비스 조급증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 고객이 이런 말을 한다고 하여 바로 바꾸고, 저 고객이 저런 말을 하여 바로 반응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이 고객의 말과 저 고객의 말과, 말하지 않는 수많은 고객의 말을 고려해보고 진행하는 노련미가 필요하고 무언가 하나를 고치더라도 다음 단계의 변화를 대비하고, 그에 맞추어 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비스에 대한 조급증을 가지다보면, 결코 이렇게 될 수 없다. 아침에 배너 바꾸고 점심 때도 배너를 바꾸어야 속이 풀린다. 정작 고객은 그 배너를 볼 가능성이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사업담당자는 하루 종일 그 배너만 쳐다보다보니, "내 사이트가 왜 이렇게 정체된 느낌이지?" 이런 생각을 하게되고, 눈에 보이는 배너만 바꿔보고 스스로 변화무쌍한 사이트를 운영중이라고 자위한다.

자기 일이라고 느끼는 주인의식

얼마전 트위터에서 누군가 "프로젝트의 성공에는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일에 대해 주인의식을 느껴야"한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중요하나 쉽게 이뤄지기 힘든 부분이다. 항상 디자이너는 일을 "받는 입장"이다보니 본인의 일정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처리속도가 느리다" 또는 "병목구간"이라는 평을 받기 쉽상이다. 개발자는 열심히 해서 빨리 처리해주면, 그 효율적인 관리 시간만큼 보상이 따르기보다 그 다음 일이 바로 밀고 들어와서,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일정관리를 해야 현명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니 오히려 그게 능력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자기 일이라는 느끼는 주인의식 있는 구성원들이라면, 보다 효율적이고 능동적으로 임할 일을, "객체"로서 존재하다보면, "처리해준다"는 식의 일정관리를 하게 된다. 내 일보다는 남의 일이 되고, 그 사람의 일이 된다면 그것만큼 신나지 않을 일이 어디 있겠는가.

쉽지 않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많은 인터넷 기업을 겪어보진 못했지만, 최소한 개발자가 "자기 일"이라고 느끼는 조직과 느끼지 않은 조직의 경쟁에서, 전자가 확연히 이겨나가는 것을 2003년부터 2008년 사이에 경험했었다. 그게 당연하고 그렇게 조직이 굴러가야 정상이라고 느끼는 내가 보기에, 그러지 않은 조직은 비정상이고, 언젠가 자연도태될 그런 상태라고 보여지기 마련이다.

서비스 조급증의 이면에는, Staff 구성원들의 피해의식과 주체보다는 객체로서의 존재감이 스며들고 있고, 그것이 장애 아닌 장애가 되고 있다고 느낀다. 하나의 사업단위 산출물에는,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 사업담당자까지 모두가 발을 담그고 있고 그 사업에 대해서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고 임해야 성공할 수 있다. 혼연일체가 되지 않는 이상, 절대 성공하기 힘들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터넷 서비스 기업들에게서 그런 혼연일체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인 것 같다.

period.

p.s. 아래 그림과 같은 도식은 전형적인 외부용역 관계에서나 유효한 것이다.
오히려 이렇지 않게 하기 위해서 더더욱 사업주체-기획자-디자이너-개발자의 혼연일체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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