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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위메프 좌측 배너에 올라온 디시인사이드 김유식 대장의 "개드립 파라다이스" 소개 배너 때문에 이 책을 알게 되었다. 바로 책을 구해서 읽어보았다. 단지 궁금해서, 구치소에서 보낸 100여일의 생활이 어떨지 궁금했다. 쉽게 쓰여진 문체에, 쑥쑥 읽혀간다.

구치소라는 공간은 참으로 묘하다. 형이 확정되지 않은 사람들이 구속된 생활을 하는 공간인데, 감옥과 일반 생활의 중간 지대라고 해야할까?

무언가 김유식 대장의 애환이나 애절한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 같아서 바로 구해서 본 책인데, 결론은 "별로다"

특히나 그 주된 내용이, 거짓말 많이 치는 어린 친구 괴롭히기, 조직 적응능력이 떨어지는 인물들에 대한 괴롭히는 이야기 등이 거의 대부분이고, 구치소에서 어떻게 오징어를 불려먹고, 김치찌개 끓여먹고, 설거지를 어떻게 회피하고 등의 정말 신변잡기적인 이야기 투성이다.

사실 내가 이 블로그 글을 쓰는 것 자체도, 참 어이없지만, 누군가 이 글을 보고, 이 책을 읽는데 시간투여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실 디시인사이드라는 회사, 너무 좋아하는 회사중에 하나였다. 적어도 대학시절의 디지털카메라와 노트북에 대한 내 생활의 대부분은 이 사이트를 통해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커뮤니티를 만들어낸 장본인인, 김유식이라는 사람을 참 좋아했다.

그래서 이 책이 광고나오자마자, 꼭 한번 사서 보겠노라했는데 너무 큰 기대했나보다. 그냥 구치소에서 있었던 하루 하루의 일기의 묶음 수준이고, 그 일기들도 정말 신변잡기적인 내용들에 다름아니다.

제목대로, 본인의 "개드립 파라다이스" 였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만날 수도 있는 사람이겠지만, 이렇게라도 리뷰 쓰지 않으면 내가 주말에 보낸 6시간 여가 억울해서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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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리뷰는, 자칫 스포일러 수준의 리뷰일 수 있습니다. 영화를 감상하시기 전에 보시는 것은 자유이나, 스포일러라고 비난하지는 말아주십시오. ^^


윤태호 작가의 이끼를 맨 처음 접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다음 메인의 포토뉴스 칸에 떡하니 있는 만화 스틸 컷 한 장이, 매주 그의 만화를 기다리게 만들었고 중간에 작가가 연재를 쉬는 날에는 나 역시 로그인해서 댓글로 작가를 욕할까 싶을 정도로 애간장이 탔었고, 중간에 잠시 몇 화는 마치 풍경 흐르듯이 지나갈 때가 있었는데, 그때 역시 작가에게 댓글로 욕할 뻔 했다. 그만큼 애가타게 기다리며 봤던 만화였다. 정말 인터넷 만화로서, 이 작가에게 돈 한 푼 지급하지 않고 이렇게 고급 만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었다. 이 만화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니, 정말 설레고 벅찬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만화만큼 재밌다는 사람과, 만화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람까지.. 적어도 나 역시 맨 처음 이끼를 보고나서 나올 때에는, "아 이 멍한 기분은 뭐지" 하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으니.. 그날 밤에는 혼자 앉아서 이끼 전 편을 다시 한번 만화로 훑었다. 그러고 나선, "아 영화가 많이 부족하네" 이런 평을 스스로 내렸었다.

오늘 밤, 다시 한번 영화 "이끼"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오늘은 정말 지난 번과 다른 시각, 다른 자세로 봤다. 아 이 영화 정말 쉽지 않은 영화이다. 특히나 만화에서 접할 수 없는 음향 효과, 그리고 화면 앵글, 사람들의 표정 변화, 눈동자 변화 등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철저히 속일 수 있었다. 영화 "이끼"는 만화 "이끼"와 다른 여러가지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

해석 1 - 이장 천용덕은 나쁜 사람이었고, 아버지 유목형은 피해자였으며 그 누명을 벗기기 위하여 아들이...
맨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었다.
아들 유해국은, 편향된 시각을 가진 검사로부터 "관상부터가 가해자"라는 평을 들었지만 결국 그 자신은 무고한 사람으로 규정되고, 아버지 유목형 역시 사람들을 감동하고 교화시키는 분으로써, 심지어 범죄자들에게 해꼬지를 당하면서도 묵묵히 자기 도양을 키워가는 존재이다. 아버지가 죽고나서 찾아간 마을에는 범죄자 출신과 형사 출신이 있고, 그들은 자신이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에 돌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선과 악의 대립 구도가 명확하다. 한 쪽은 많은 이들을 선교하고, 성경 말씀을 인용하고 범죄자의 핍박에도 굴하지 않는 선량한 사람, 그리고 그의 아들 역시 삐뚤어진 검사의 시각에서 무죄의 선고를 받고야 마는 올바른 사람..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비리형사와 전과자 출신... 너무나 대립구도가 명확하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엄청난 재산이 될 수 있는 땅이 이장 천용덕에게 이전되는 것까지 더해지면 우리의 눈에는 벌써 이렇게 결론내려진다.

더군다나 중간 중간 나오는 내용을 보면 유목형을 이용하여 이장 천용덕이 부를 축적하고 그걸 통해서 편하게 살고자 하는 것이나, 유목형을 괴롭히는 장면들을 보면 더더욱 이런 느낌이 강해진다.
가장 전형적인 선악구도, 대립구도를 그려낸 권선징악적인 영화로 보여질 수 있다.

해석 2 - 이장과 그의 무리는 짐승에서 인간이 되고자 노력하는 중이었고, 오히려 유목형은 그들을 "구분짓고 낙인"하는 사람이고 그의 아들은 그들의 "근성"을 건드린 침입자...
오늘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이다. 200억이 넘는 재산은 그 마을의 공동 소유이다. 몇번이나 "공동소유"에 대해서 검색하고 유해국 역시 아버지의 지분이 있기에 남아있겠노라고 한다. 하지만 그 많은 재산을 가진 이 공동집단에는 전혀 부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장 역시, 아침에 양치 후에 먹는 요구르트 하나, 그리고 고스톱 치면서 먹는 새우깡 부스러기 등이 전부이다. 우리는 어쩌면 자본주의의 익숙함에, 돈에 대한 욕심이 모든 화를 부르고 그 화를 부르는 주체가 나쁜 것이라고 규명지은 걸지도 모른다.

[1] 유해국은 검사가 그에게 그랬듯이 "관상부터 가해자"로 규명하고 마을 사람들을 대한다.
[2] 아버지의 죽음에는 무언가 비밀이 있고 누명이 있을거라 의심하기 시작한다.
[3] 모든 의심의 시작은, 불명확한 땅과 재산의 이전으로부터 기인한다. 마음의 의심에서 시작된 것이다.
[4] 땅굴을 발견하고 그것에 대해 캐면서, "전석만"의 집에 칩입하여 뒤진다. 칩입자는 유해국이다. 그 과정에서 전석만의 숨겨진 근성을 건드려서 그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만다.
[5] 전석만의 죽음에 대해 참지 못하는 하성규는, 유해국에게 자신의 집에 모든 비밀이 다 있다고 하여 유해국을 유인하는데 유해국은 그 때에도 아무도 없는 집에 칩입하여 뒤지기 시작한다. 유해국은 여기서도 침입자다.
[6] 모든 정황을 보면, 지극히 외지의 사람에게 어느 집단의 구성원들이 던질 수 있는 말들을, 유해국은 너무나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여기서 살기 힘들어" "서울가서 살아".. 심지어 "오늘 수퍼에서 자나" 라는 질문 역시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어서 그럴 것이라 여긴다.

이런 상황을 생각하며 이 영화를 보면, 정말 유해국은 침입자다. 검사처럼 관상(외관)으로 모든걸 결정짓고 이 마을 사람들을 아버지를 죽인 범죄자, 돈에 눈이 먼 사람들로 규정하고 의심하고 비밀을 캐려고 한다.

[A] 검사 역시, 이 마을에 도착하여 마을 이장을 보고서,  "난 당신이 싫습니다"라고 규정짓는다. 관상으로 유해국을 규정지은 자가 또 다시 외관으로 그 사람을 규정짓고야 만다. 유해국은 그 순간, 자신이 당했던 그 과거의 검사와 동일인이 되고 만다.
[B] 이장의 비밀이라는 것은, 결국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되기 보다 오로지 돈과 관련된 것들 뿐이다. 하지만 그 모아진 돈은 이 구성원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사용되었지 이장의 개인 축재를 위해서 사용되었거나 그런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탐욕 = 나쁜놈이라고 규정짓고 있다. 그 탐욕은 이 공동체의 존립과 유지를 위한 탐욕이었을 수 있다.

하나의 균질화된 집단에 어느 날, 다른 물질(유목형)이 침투했다. 그 물질은 기존의 집단을 비난하고, 죄인으로 규정짓고 항상 회개하라, 채소로 생식을 하자, 성매매를 하지 말자 등의 바른 소리로 그 기존 집단을 죄인으로 낙인한다. 그러던 순간 자신 역시 그 사람들을 죽이고자 하는 "근성"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마을에서 더더욱 소외되게 된다. 즉 다른 물질로서 존재하며 비난했던 존재가 그 스스로 그 집단과 다를 바 없음을 확인해준 순간, 더 이상 그의 존재 의미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의 죽음 이우에, 더 강한 다른 물질(유해국)이 침투하여 이 균질화된 집단을 흔들고 말았다. 그들의 숨겨진 범죄 근성을 건드려서 죽이고야 말았던 것이다. 마치 바이러스가 침투하였다가 실패한 이후에 더 강한 수퍼바이러스가 침투하듯이 유해국은 유목형의 아들로서 더 강하게 죄인을 규정짓고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가해자는 유목형과 그의 아들 유해국일지 모른다. 짐승에서 인간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선 긋고 낙인하면서 핍박한 것일지 모른다. 어쩌면 검사로부터 유해국이 듣고자 했던 "당신은 잘못이 없다"라는 말을, 그 마을 사람들 역시 유목형에게, 그리고 그의 아들에게 듣고 싶었는 것일지 모른다.

해석 3 - 영지는 유목형을 통해서 어린 시절 성폭행한 사람들에게 복수를, 유해국을 통해서 성폭행한 마을 사람들에게 복수를...
어린 시절 영지의 성폭행 사건을 유목형은 이장 천용덕에게 부탁하여 복수하게 한다. 삼덕기도원의 성경책에는 성폭행에 가담한 사람들의 이름이 있고 이를 조사하여 천용덕이 사적구제를 통하여 복수를 해준다.

어른이 된 이후에 유목형과 천용덕의 마을에 함께 있게된 영지에게 천용덕과 그의 일당들이 성폭행을 일삼게 되고, 유목형이 죽고난 이후에 영지는 그의 아들을 통하여 그들에게 복수하게 된다. 그의 아들에게 아버지에게 그랬듯이 삼덕기도원이 적힌 성격책이 놓여져 있고, 거기에는 "천용덕"이라는 이름이 적혀있다.

두 번의 복수 과정이 비슷하고 그 과정 역시 사적구제의 모습 그대로이다. 어쩌면 영지는 아버지를 통하여 이 사회에 대하여 복수하고, 그 아버지가 실패한 두 번째 집단에게는 더 강한 그의 아들을 통하여 복수한 것일 수 있다. 실제로 영지는 유해국이 하성규의 집에서 낫으로 베일뻔하고, 상처입고 도망가려는 것을 붙잡고 설득한다. 운전하며 그에게 "이 모든걸 해결할 사람은 당신 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영지가 바라는 해결이라는 것은 유목형의 억울한 죽음이 아니라, 자신의 복수이고 그 복수를 이뤄내기 위함을 이야기한 것일지 모른다.

부족한 결론...
한 편의 영화를 보면서, 갖가지 음향, 표정, 눈동자 등에서 다양한 생각을 해본다. 다만 꼭 한번은 반대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보기 바란다. 우리 스스로가 검사의 눈, 유해국의 눈으로, 관상학적으로 이미 넌 가해자, 나쁜 놈, 짐승이라고 여기고 보고 있지 않았는지 말이다.

칩입자는 오히려 유해국일지 모른다. 이장 천용덕의 마지막 대사처럼, "근성"을 건드리는 그 사소한 행동 때문에 범죄가 일어난다. 경찰들이 보기에는 "우스운" 일로도 범죄가 일어나는 세상에 유해국이 저지른 행동은 이미 그 선을 넘은지 오래다. "우리 아버질 당신들이 죽이지 않았을까요?" "이 땅굴이 있는데 이 집에 칩입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아무도 안계세요?"

누가 칩입자고, 누가 가해자인지, 그리고 이 영화에서 말하는 이끼처럼 산다는 것이 무엇일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어쩌면 이끼처럼 잠잠히 살고자 하는 마을주민-이장 천용덕과 김덕천, 전성만, 하성규-을 괴롭히는 건 유해국이나 유목형과 같은 이질적인 침입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이 영화,  꼭 소장하고픈 영화다.

p.s. 기억 나는 주요 장면들
- 영지가 주는 성격책 (천용덕에게, 유해국에게)
- 영지의 첫번째 복수에는 하성규 역할을 하는 김준배가 또 나온다.
- 불타죽은 하성규가 죽어가며, 갖고 나오던 것은 사진들과, 공부하는 책이었다-하성규집에도 비밀은 없었다.
- 인터넷 안될때 나오는 daum.net (다음 연재 만화였으니)
- 하림 닭 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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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요제에 나온, 대학생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노래에 담긴 그 사람의 호소력이 짙게 느껴지는...

요즘 아동학대/성추행 이슈가 많이 들리는데, 이런 노래 들으면 숙연해진다는...

황유정님, 좋은 노래 많이 기대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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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에서 하는 선덕여왕, 정말 잘만든, 재미있는 드라마이다.
11번가 김준수팀장은, 선덕여왕과 미실의 관계를 G마켓+옥션 vs. 11번가에 비유하는
재미있는 글을 쓰기도 했던데, 물론 그 덕분에 나도 이 드라마를 관심있게 봤는데..

엊그제 아주 가슴에 비수가 되는 대사가 있었다.

넌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않느냐..
저놈은 간절한 우리보다 더 간절하게 빌었다..
진작 무엇이든 하지 그랬어?라는 말 한마디.. 정말 비수가 되어 꽂힌다.

힘들고, 피곤하고 지칠때, 나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넌 살기위해 무얼하고 있니?

진짜 내가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다니까요!

콱! 이놈이 살라고 수를 부리는 겁니다!

하지만 사흘을 벌었잖아..누가 알아..
사흘안에 금덩이가 쏟아질지..

죽을 고비는 몇번이고 넘겼어

몇번이고 넘기면서 여기까지 왔어

엄마까지 죽게하고 겨우 온거란 말야

내 실수 하나로 노예로 판다고?

아니 여기서 그냥 죽으라고?

안돼.. 문노를 만나야돼

넌 가도 돼.. 어서 가거라

넌 뭘했는데.. 넌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않느냐

봐라..저놈 가는길 막는 사람 아무도 없어

간절한 우리보다 더 간절하게 빌었어

그렇게 살고 싶었어? 거짓말까지 하면서?

그럼 진작 무엇이든 하지 그랬어?

그럼 혹시 금덩이가 쏟아졌을지 

지나가던 공주가 구해줬을지

누가알아


(사진출처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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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재 감독의 작전.. 정말 걸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의 단면만 본다면, 한탕을 노리는 작전 세력들간의 알력다툼,
검은 머리 양놈, PB, 증권사직원, 투자자문사의 얽히고 얽힌 이해관계..
각자의 주머니를 챙기는 그런 행태를 보여주는, 말 그대로의 주식 작전이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씁쓸한 자본주의의 단면이 숨겨져있다.

박용하가 이야기했던, "10억으로 1% 먹는 놈과, 100만원으로 1% 먹는 놈"이 다르다는 현실..
말 그대로, 총알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과..

장판지라고 하는, 매일 매일의 거래 현황을 볼 수 있는 정보에서 우위에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의 "딱총 갖고 전투 하는 개미"들과의 피튀기는 전쟁..

무엇보다, 위 사진에서 나오는 장면에서 가장 씁쓸했던..
아이스버킷에 담겨져 있는 양주 두 병 만큼을, 200만원이라는 수표 때문에
토할듯 하면서도 먹어대는 술집 아가씨의 모습에서..

내 모습과, 우리네 사는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보인다고 할까?

어쩌면 우린 자본주의의 그늘에서, 돈의 그늘에 얽매여서 올바른 판단을 못하고
내 몸 망가져가며, 무엇일지도 모를 곳을 향해 달려가는지도 모른다.

발렌타인데이에 남자들이 가장 받고 싶은 선물 1순위가 돈이고,
부모님들이 가장 바라는 생일선물도 돈이고,
학생들이 시험 잘봐서 받고 싶은 선물이 돈이라는 게 현실이다..

오늘 9시 뉴스에는, 강남 학생들과 강북 학생들의 성적차를 비교하면서,
부와 교육의 상관관계를 언급하려 하다가, 임실군의 사례를 들더군...

씁쓸하기 그지없다. 비겁한 변명이라고 해야하나?

우린 가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이러면서,
"어느 지역은 성적이 대체로 서울만큼 좋아서 행복하다"라는 식의 앞뒤가 안맞는 말을 해댄다.


p.s. 청와대 행정관의 이메일 사건이 난리던데...
"개인적"이라는 레토릭에 얽매여서 서로 토론이 엇갈리던데.. 핵심은, 청와대 행정관이 다음 한메일을
이용해서 개인적으로 보냈던 안 보냈건, [청와대 직원]이 [경창철 홍보담당관]에게 보냈다는 사실이다..
다들 서로 싸우고 토론하는 거 보면 가끔은, 아주 답답헐 때가 많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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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빚대신 갚게 되는 살 덩어리 1파운드..
윌 스미스 주연의 세븐 파운즈는, 바로 그 빚 7 덩어리, 7명에 대한 빚을 의미한다.

자신이 사랑하던 와이프와, 무고하게 죽어간 6명의 사람들..
운전 중에 바라보던 블랙베리의 메시지 한 통 때문에, 그렇게 7명을 죽게 만든다.

그 빚을 갚기 위해서, 선한 사람들을 찾아 나서고,
결국엔 그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헌사한다.

마지막의 에밀리에게 사랑한다는 감정을 느끼고 나서,
심장 Heart을 이식해주기로 마음 먹는 것은 정말 눈물 없이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숭고한 죽음이 어디에 있으랴마는,
그래도 자신의 책임에 의해서 무고하게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에 시작된 윌 스미스의 세븐 파운즈는, 영화를 보는 내내
실존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난 누구에게, 1파운드라도 빚지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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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을 해?

빅터 리의 영화평[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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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 포트만의 요부스러움이 극도로 잘 나타난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권력지향적인 성격, 그리고 성공지향적인 성격이 극렬하게 그려진
부끄러운 자화상 같은 영화가 아닐까 싶다.

왕자를 낳기 위해서, 왕과 기꺼이 동침을 하고 마는 볼린 가문의 두 여자, 앤과 메리..
그리고 왕궁에서의 벼슬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마는 메리의 남편..
(마누라가 남과 동침하는걸 수긍할 수 밖에 없는 그의 모습은 더더욱 이 영화를 돋보이게 한다)

헨리8세 역할을 하는 에릭 바나의 느끼하면서도 강렬한 눈빛과,
순진한듯 하면서 시종일괄 자신의 몫은 제대로 챙기는 메리..
악녀같은 요부스러움을 극도로 표현하면서 승자가 된듯한 앤의 모습까지..

천일의 스캔들이란 제목보다, The other Boleyn Girl이 더더욱 제목에 어울린다.

이기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묘사가 잘된 영화라고 추천하고 싶다.

2008년 4월경, 쓴 일기를 우연치않게 찾아서 다시 올림.. ^^

p.s. 안재환의 자살 소식을 듣고선, 솔직히 기분이 묘했다.
안재환 닮았단 소릴 들었었는데(돌 던지지마쇼 ^^), 그리고 레오노라는 술집에
G마켓 초창기 시절에 자주 들렀었는데... 아쉽다.
자본주의에서는 인간의 목숨이란, 고작 돈 몇억 가치밖에 안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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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의 고뇌를 볼 수 있다는 영화
류호현(Ryan) 군의 강력한 추천 때문에 꼭 봐야했던 영화를 지난 주말에 봤다.

영화 끝날때까지 Dark Night (어두운 밤)인 줄 알았다.
영화 중간에 나온, 밝아오기 전의 새벽이 가장 어두운 밤이라는 연설을 들으면서,
흠 그래서 제목을 그렇게 지은 것이군 이랬는데... 끝나고 나서 보니 밤이 아니었다는... ㅋ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소름돋게 느낀 것은,

> 필요 최소한의 범죄란 있기 마련이다.
즉 범죄를 완전히 소탕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비용은 너무나 천문학적인 숫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인적/물적인 많은 위험과 손해를 감수하면서 박멸할 수 없다면 사회의 기반을 방해하는 만큼만
억제하는 정책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배트맨이 아무리 기고 날아봐야 범죄자는 소탕될 수 없다.
오히려 애꿏은 경찰과 그 가족들만 피해를 입을 뿐이다.

> 조커 역의 히스 레저의 요절 소식
그가 올해 초에 29세의 나이로 요절했다고 한다. 약물의 우발적 과용이라고 하는데..
그의 연기는 정말 최고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배트맨이 아니라, 조커라고 해야할지 모른다.

> 죄수의 딜레마를 영화로 보여준.. 하지만 현실은 다 폭파되었을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라는 것이 있다. 서로 소통되지 않는 두 개의 공간에 각각의 공범자를 집어넣고
서로 공범관계를 시인하면 자신의 죄는 감경시켜주고, 상대방의 유죄를 입증시키겠다는
설득을 하게 되면, 100% 죄를 시인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 때 감경되는 형량보다
둘다 묵비권을 행사하여 받는 형량이 훨씬 적음에도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시민들이 탑승한 배 한 척과 죄수들이 탑승한 배 한 척이 강물 위에 떠 있는 순간
자정까지 서로가 서로를 폭파시킬 수 있는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둘다 터진다는 협박을 조커가 하게된다.

영화에서는 무전기도 단절되고 서로 간의 소통이 단절되었는데..
시민들은 민주주의랍시고 투표를 통해 상대의 배를 터뜨리자고 하고,
죄수들은 소요를 일으키다가 어느 멋진 죄수가 리모컨을 강물에 던져버리는데..

현실에는 100% 터진다. 내가 조커라고 한다면 서로 상대방이 누르는 순간 터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버튼을 눌러도 12시까지는 전혀 반응이 없도록 할 것이다. 아마 둘 모두 12시가 되기 전에
상대방의 배를 터뜨리기 위한 리모콘을 누를 것이며, 죄수의 딜레마는 현실에서도 또 한번
입증될 것이다.

조커는 [악한 인간]을 입증하기 보다 [이기적인 인간]을 입증하려고 했던 것 같다.
인간의 이기성은 이타성보다 쉽게 표현되지 않지만 누구나 내재하고 있는 성격이다.

폭력 조직의 보스들은 그 이기성으로 돈을 탐하고 (수단이야 불법적이지만),
배트맨은 그 이기성으로 자신의 사랑과 명예를 탐하고
검사 역시 그 이기성으로 자신의 그 다음 선거 출마를 탐하고
시민들이나 죄수들이나 자신의 목숨을 탐하기 마련이다.

그 이기성이 합법적으로 표출되면 합리성과 경제성이라는 이름으로 나올 것이고
불법적으로 표출되면 폭력이나 사기, 공갈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그러고 보면, 수단의 적절성이나 합법성도, 목적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필수 조건이 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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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없이 보게된 영화인데도 맘 속에 깊이 남는 영화..

"마이 베스트 프렌드"라는 이름으로 개봉된 프랑스 영화다.
주인공 다니엘 오떼유는 고미술품 거래상을 하는데, 어느날 경매시장에서 보게된
그리스 항아리를 보고 무언가에 이끌려 낙찰을 받게 된다.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 항아리에 눈물을 가득 채웠다는, 그 항아리..

동업자는 오떼유의 생일날, 과연 그에게 진정한 친구가 있느냐 묻는다.
그러면서 진정한 친구가 나타나면, 그 항아리를 주겠노라고 하는데..

인생에 둘도 없는 진정한 친구가 있는가 묻는다면... 사실 자신이 없다.
뭐랄까.. 오떼유가 찾아간 친구들은, 모두들 너와 내가 진정한 친구였는가 하는 반문을 하는데..

나 역시... 내가 누군가를 찾아가 손을 내밀 때, 따스한 손길을 내어줄 친구가 있는지..
예전 결혼하기전 와이프가 내게 "진정한 친구"가 있느냐는 질문에, 머쓱해 하며
망설여했고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기억이 난다.

내 무덤에 와서 눈물 흘려줄 수 있는 친구, 하나 정도는 있는걸까?
아니 있을거라고 스스로 생각해본다.

가끔은, 가끔은, 친구에게 묻고 싶다. 용기를 내어서..
"너 내가 죽는 날, 내 장례식장에 와서 눈물 흘려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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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나온 영화는 대부분,
피가 낭자하거나 잔인하거나 등등 뭐랄까 자극적인 요소가 많다.
점점 관객들의 교감신경을 자극하여서 몰입하게 하려고 하거나
충격을 먹게해서 영화에 대한 기억력을 극대화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

임신한 아내와 그런 영화를 볼 수 없어서, 부득이하게 고른 영화..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Lars and the Real Girl"이다.


한국 포스터를 보고서는, 너무나 식상해보여서..
뻔한 사랑이야기에 해피엔딩의 영화일거라 생각했는데..
21세기에 어울릴법한 사랑 영화다.

스토리는 대략 이렇다.
부모님이 죽고, 형 거스는 결혼을 하고 부모님이 살던 집에 살게 된다.
동생 라르스는 형네 부부를 피해서 주차장에 들어가 살게되고,
점점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게 된다.

형과 형수는 식사도 같이 하자고 하고 여러모로
가족으로 끌여들여 보려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라르스는 회사 동료가 인터넷에서 리얼돌(여성모양 자위기구) 사이트를
보고 있는 것을 보고 그냥 넘어가듯 하지만 6개월 뒤에 그 곳에서
말 못하는 자신의 이상형을 사버린다. 말 그대로 Real Girl이다.

그 인형을 "비앙카, 브라질사람"이라고 하면서 라르스는
그 인형에게 인격을 부여해버린다. 그런데.. 그런데..

거스와 그의 형수 카린은 그런 라르스와 인형 비앙카를 가족처럼 받아들여주고
그가 사는 동네의 사람들 역시 인격으로서 받아들여준다.
영화에서 어느 할머니가 말한 것처럼,
"고양이에게 옷 입히는 것이나, UFO 모임에 후원하는 것이나"
뭐가 다르냐는... 그렇지..어쩌면..

이 영화의 주된 테제는 이거다.
홀로 남겨진 사람의 외로움이 극대화되다보면,
애정혐오로 이어진다. 즉 말 그대로 사람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하게 된다.
애정혐오가 극대화되다보니, 말도 못하는 인형을 사랑하고 싶어하고
그런 말도 못하는 인형이 최고의 사랑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이 상태를 미친 것이라고 주변이 치부하지 않고 오히려 따스하게 안아주고
결국 그 사람들의 마음이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는 걸 알아차리고선,
애정혐오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고, 그런 정상을 어느 순간 돌리고 싶어서..
주변인들에게 충격없이 회복하고 싶어서.. "비앙카"가 아프고, 죽게 된다는
상황을 만들어간다.

뭐랄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사랑, 관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잔잔하면서도 괜찮은 영화같다.


★★★★

p.s. 이 영화 보기전에 Across the Universe 를 봤는데.. 영화 어렵더라..
다시 한번 봐야겠다 싶다. (정말 어렵고 난해했다)

p.s.2. 어제 총선.. 누구의 기사처럼, 이제는 누구를 찍어야할지
그놈이 그놈같다. 대안이 없는 선택지들 사이에서 선택하라고 하니..
이게 뭐 선거냐.. 그냥 늬들끼리 알아서 해먹어라고 포기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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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풀의 순전만화라는 고유명사와 같은, 하나의 유행을 보면서..
특히나 강풀의 만화는 무조건 영화로 만들면 성공한다는 영화업계의 허황된 말들을 들으면서..
그다지 강풀의 순정만화에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었다.
뭐랄까.. 질투 비슷한 느낌이랄까..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순정만화를 보고나서는, 감히 그런 질투를 쉽사리 표현 못하겠더라..

어렸을적 사랑하는 사람과, 강원도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버리고 서울로 떠나온 송씨..
남편은 그녀를 버리고 나가버리고, 그녀의 딸조차 병에 걸려 죽는다.
홀로 남은 송씨는 서울땅에서 홀로 폐지 수거를 하면서 살아온다.

비교적 온화한 집안에서 평온하게 자란 김만석이라는 할아버지는,
당신의 와이프가 위암에 걸려 죽는 날까지 따뜻한 말한번 못한 것이 미안한 사람이다.
그녀가 죽을때 그토록 먹고 싶던 우유(위암 걸린 사람이 우유 못먹는다는 걸 여기서 첨 알았다)를
배달하는 일을 시작하면서, 그녀에 대해 못했던 것을 위로해보고자 한다.

주차장에서 홀로 사무실을 지키며 살아온 장군봉이라는 할아버지는,
당신의 와이프가 치매에 걸려서 항상 집을 잠그고 나온다.
색약이 강해져서 택시일을 그만두고 주차장에서 일을 하는데..
와이프가 암에 걸려 죽어가는데도 그걸 발견못하고 만다.

김만석 할아버지와 송이뿐(송씨) 할머니의 순박하고도 애틋한 사랑과,
그 옆에서 묵묵히 말동무를 그리워하던 장군봉 할아버지의 사랑이
마치 잘 버무린 나물처럼 어우려져 있다.

1권을 볼 때는 잔잔한 눈물을,
2권을 볼 때는 훈훈하면서도 달콤한 미소를,
3권을 볼 때는 다시 잔잔하면서 감동이 깊은 눈물을 흘렸다.

인생의 동반자, 동행자로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할지..
다시 한번 곰곰하게 생각해보게 하는 좋은 "순정 만화"인 것 같다.


아니 강풀은,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해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림으로 표현해낼 수 있다는 건..
신이 내린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만화를 보는 수많은 부부들은 적어도 그날 밤에
손을 꼬옥 잡고 잘 수 있을테니 말이다.

원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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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진의 LOST? LOST의 김윤진?
아무튼 김윤진이라는 배우가 갖는 선입견은 이 영화를 보는데 망설임을 가져다 준 것이 사실이다.

세븐데이즈, 납치영화라는 사실을 듣고 식상하리라.. 또다시 납치영화를 봐야하는가 하는 고민을 했었다.

영화를 보고나서 원신연 감독과 배우 김미숙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근래에 이런 영화를 보게 된 것을 정말 정말 감사하면서 말이다.

영화를 보는 처음 와이프가 내게 물었다. "저 상황에서 어떻게 할거야" 즉 내 딸이 납치된 상황에서 누군가, 세븐데이즈와 같은 미션을 줬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난 대답보다 먼저 침을 꼴깍 삼키고, 머릿속 가득한 납치범을 갈갈이 찢어 죽여버릴지도 모르고 오히려 한이 안 풀리면 뼈를 갈아 마셔버릴지도 모른다는 그런 잔인하면서도 피 끓는 애절함을 표현할 방법이 없어 대답 대신 어색하게 생각해본다고 대답을 회피하였다.

그런데,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내가 답답해 했던 것을 영화로, 그림으로 풀어줬다.  사적구제..

그래 어쩌면, 자기 가족을 살해한 살인범에게, 사형제도라는 것은 너무나 평화롭고 사치일 수도 있다.
그런 사형수를 내가 직접 복수하고 싶은 복수욕을 해결해주는 영화..

이 영화의 주류에 흐르는 것은, 공권력 또는 공적 집행에 대한 회의감 내지는 비판이다. (내 생각에..)

(1) 김윤진의 딸이 납치되었을 때, 집에 경찰들이 상주하면서 갖가지 기계를 부려놓는다.
노트북도 여러 대에, 많은 경찰들이 상주하는데.. 난 그 화면을 보면서, 내 딸이 납치되면
저런 상황을 공권력에 기대할 수 있을까 반문해보았다. 천만의 말씀이다.

승률 99%의 변호사도 영화속에서나 가능할 일 아닐까 싶다.

(2) 김윤진은 범인의 말을 듣고 경찰을 따돌리는데, 고가도로 위에서 경찰보고 그만 따라오라고 한다.
그래.. 공적 구제라는 것, 공권력이라는 것은 질서유지 차원의 경찰행정에 만족하는 게 다 일지 모른다.

(3) 김윤진은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그리고 증거입증책임이 검사에게 있음을 이유로 진정한 범인을
무죄로 석방되게 한다. 공권력의 최 말단의 보호수단이라는 재판 조차 때로는 이런 Rule과 Principle로
범인을 풀어줄 수 밖에 없게 한다.

(4) 김미숙은 그걸 이용하여, 공적 집행수단인 사형제도를 통하여 자기 보복을 다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그걸 이용하여 사적보복을 이룬다. 그래.. 이건 어쩌면 이 영화의 주된 테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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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또다시 볼만한 영화, 추격자.
피해자들이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무참히 살해되고마는, 그리고 내가 언제든지 그런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극한의 공포감을 통하여 영화 보는 내내 긴장감을 극대화시켜준, 그리고 영화본 직후에는 "이 따위 영화가"라고 생각했다가 점점 생각이 바뀌게 만드는 괜찮은 영화다.

미국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한국판이라고 하면 오히려 감독이 서운해 할만큼 잘 만들었다!

코엔형제보다 낫다. ^^

저 화면에서 보다시피 이 영화도, 주인공인 보도방을 운영하는 전직 형사출신인 "엄중호"가 연쇄살인범인 "지영민"을 직접 잡는다. 공권력은 이 영화에서는 무기력함을 보여주고 때로는 무능함을 보여준다. 심지어 똥 맞은 시장에 대한 책임 회피 내지는 언론보도회피를 위해서라도 이 사건을 종결지어야 한다는 경찰 상관의 말에서, 공권력이란 인권이나 개개의 생명을, 자신의 자존심보다 무가치하게 생각한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이 영화의 밑바탕 그림 역시 공권력, 특히 검찰과 경찰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 묻어나온다.

(1) 주인공은 경찰에 협조를 구하고 본인이 찾고자하는 범인에 대해 같이 찾아줄 것을, 동참을 요구하다가
결국엔 스스로 나서게 된다.

(2) 경찰에 겨우 인계한 범인 역시, 어린 나이의 검사 영감께서, 폭행 흔적에 대해 되려 질책하며,
주인공을 폭행 혐의로 수배하라고 지시한다.

(3) 범인이 다시 범행현장으로 돌아올때, 여자 형사가 따라붙지만.. 구멍가게에서 망치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사람이 죽어나가도, 그거 하나 제지 못한다. 발견을 못한건지, 아니면 모른체 한 것인지..

열 명의 범인을 놓쳐도, 한 명의 무고한 시민이 희생되어서는 안된다는 법률 격언이 너무나 무색해진다.
우린 그런 Maxim에 의존하여, 자칫 한 명의 범인이 만드는 죽음을 방치할 수 있는건 아닌지..


범죄의 강도와 형태, 그리고 그 잔인함이 변화되어 가는 것에, 과연 법은 적응하고 있는 것인지..

물론 자유, 인권의 입장도 중요하지만.. 아 이 복잡한 머리속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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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이따위 사족을 쓰려고 한게 아닌데..
쩝.. 그냥 요즘 내가 맡은 팀이 힘들어하는데.. 그 가운데 영화관도 한 몫을 거들어서..
영화관들.. 할인정책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었으면 한다.

문화상품이어서, 스크린쿼터 사수하여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상품의 질을 개선해서 스크린쿼터보다 더 좋은 안전 장치를 만들었다.

문화이면서, 분명히 "상품"인 것이다. "상품"은 잘 팔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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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 포스터
먼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은, 무고하게도 총칼에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에 심심한 위로의 마음 전하고자 합니다.

2007년, 김지훈 감독이라는 사람이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1988년 즈음인 걸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4학년때 웅변대회를 위하여 광주를 간 적이 있다.
그 전에 우리 집 비디오로 봤던 광주 5.18 당시의 화면들을 잊지 못한 채,
광주에 도착했었다. "피에 젖은 금남로"라는 말을 들어왔던 나에게,
그 땅에서 먹었던 냉면 한 그릇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8년 가까이 지난 땅에서, 먹던 그 날의 그 냉면은,
내 목을 쉽사리 넘어가지 못했었다. 왜냐면 그날의 그 피들이 낭자했던 도로에서
냉면 국물을 먹는다는 게 쉽게 비위에 와닿치가 않았던 터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울렁거렸다.
2007년과 1980년 사이에 바뀐 것은, 27년의 시간과 문민정부라고 불리우는 대통령
일부 만이 아니던가.. 그 당시에 정권을 갖고 있던 실세들은 여전히 호형호제하며
이 사회를 쥐었다가 폈다가를 계속하고 있는데..

우린 고작 이런 영화가 나올때만, 잠시 아 그 당시 저런 아픔이 있었노라고 눈물을 흘리며
잠시 생각에 빠지다가, 어느 순간 또다른 소재가 생기면 물 흐르듯이 잊어버리고마는
필부같은 일생을 살 뿐이다.

이 영화에서 보여지듯이 필부의 죽음은, 정권의 유지나 정권의 정당성 획득을 위해서는
그저 성남 모란시장의 개값보다 못하듯이 죽어나가는 것이다.

오늘 네이버에서, 어떤 중학생의 리뷰를 보았다.
"영화가 감동을 주지도 못하고... 사람들이 우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가족들이 죽지
않은 사람들이 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글을 썼는데..

그걸 보면서, 가슴이 턱하니 막힌다.
광주의 그날의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울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그저 전라도 광주의 어느 일부에 대한 일이 아니라,
이 나라에 대한 일이었기 때문인데..

27년의 시간이, 어느 순간 말하기 쉬운 중학생의 말 한 마디로
재단될만큼 큰 간격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한 세대라고 할 수 있는 27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화려한 휴가는, 여전히 화려한 휴가라는 작전명을 두고 흐르고 있을 지 모르겠다.
김지훈 감독과 같이 생각 있는 사람들의 영화가 조용히 언론에서 파묻히고
D-war 같은 것에 주목할 수 밖에 만드는 그런 분위기로 작전은 흐른다.


아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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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차용된 이 한 장의 사진은,
광주518을 이야기할 때 항상 나오는 사진이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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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16세기에 살았던 21세기의 여인이라는 멋진 카피를 갖고
141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영화관에서 날 괴롭혔던 영화다.

사람도 없는 심야라서, 자리도 편했건만...
앞자리에 발도 올려보고, 허리도 쭈욱 곧게 펴고 봤건만
영화보는 내내,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기분이 그닥 좋지 않은건..
이 영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순전히 내 탓일지도 모른다.

역사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이야기들을 간간히 풀어주고,
황진이가 벽계수에게 전한 시를 전달해주고,
화적떼가 된 "놈"이와의 사이에서 애틋할 뻔한 사랑도 풀어주고..

도무지 알 수 없는 내용들은 분절되고 파편화된 소재들을 연결시키느라
다들 머리가 아팠을 것 같다. 무언가 하나에 집중되지 못한 느낌을 갖는 것은...

왜 서경덕 선생을 찾아가서 그 생뚱맞은 선문답을 나눈 것이며,
벽계수와는 그냥 에피소드 형태로 지나가듯 그런 것이며,
"놈이"가 차지에서, 화적으로 넘어가는 이야기 전개도 도약이 심하고..

뭐랄까.. 한 20부작 대하드라마로 만들어야 할 내용들을,
141분에 한껏 녹여보려고 하니.. 이것도 넣어야 될 것 같고
저것도 넣어야 될 것 같았나보다.

나에게는,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는데, 각자 음식들이 맛도 없는데
많기만 많아서 괴로웠던것 같다.

21세기에 본, 16세기 소재의 최악의 영화였다.
각 요소들이 따로 노는 비빔밥 같은...
한국 영화의 침체기라고, 할리우드가 영화관을 평정했다고 기사 쓰지마라..
이런 영화 있으면 나같아도 안본다.

p.s. 아참 일기 제목은 이런 글 쓰려고 한거 아닌데 흥분했나보다.
이런 영화도 수용하고 좋아라하는 관객이 되어야 하는데 난 아닌가보다.
일본처럼 인구수가 1억 넘으면 이런 영화 좋아라하는 마니아 생기겠지..

과다한 아웃포커스를 이용한, 비주얼에 치중한 영화...
사운드는 마치 녹음실에서 재녹음한듯한 현실감 떨어지는 사운드..
유지태, 송혜교의 어설프고 느낌없는 대사 진행과 연기..
어느 것 하나.. 맘에 드는 것 없는데.. 이런 것 좋아하는 사람 생겨야
문화의 다양성이 충족될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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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고향이라는 이유 하나로, 경남 밀양 땅에 아들(준)과 함께 내려오는 용기를 부린다.
피아노 학원을 차리고서는, 그 지역 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동네 사람들에게 인사도 하고,
땅에 투자좀 하겠다는 등의 호기 아닌 호기도 부려본다.

그런 노력 가운데, 아들 준이, 다니던 웅변학원 원장(어떻게 웅변학원 원장들은 하나같이
내가 기억하는 초등학교 시절의 내 원장선생과 닮았는지 원 ㅡㅡ;;)에게 납치를 당하고
처참하게 죽게 된다.

그리고선, 전도연은 의지할 곳 하나 없는 텅빈 집에서 살게되고,
종교와 종교 커뮤니티에 의지하게 된다.

생각나는 대로, 느끼는 대로 끄적여 본다.
1. 송강호 같은 사랑도 사랑이다.
곁에서 물처럼, 공기처럼, 바람처럼... 그저 바라만보고 있지.. 하는 사랑도 사랑이다.
때로는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때론 송강호가 어머니한테 화 내듯이, 짜증내듯이 하는 것도
사랑이다. 사랑이란, 표현하지 않을 때 더 강할 수 있다.

2. 전도연과 송강호의 연기에 흠뻑 빠진다.
전도연의 감정연기, 그리고 송강호의 자연스러움이 흠뻑 드러난다.
정말 둘 모두,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space)을 관객에게 부여한다.
카메라 감독의 카메라 워크 역시, 뭐랄까... 생동감을 부여하는 것 같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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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홀로 남겨진 집에서 전도연이 느낀 공포를 느낀적 있다.
예전 강변역에 있는 아파트에서 잠시 살때의 일이다.
어느 날 밤, 혼자 이 넓은 아파트에서, 나 혼자 존재한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다.
음악도 켜보고, 불도 켰으나.. 방이 많다는 것이.. 그 방과 방 사이에 문이 있고
벽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무섭고 공포스러웠다.
홀로 된다는 것, 그리고 혼자 있다는 것은 그만큼 외롭고 무서운 일이었다.

4. 기독교, 커뮤니티 그리고 따돌림
난 사실 기독교 신자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기독교에 관하여 글을 쓴다는 것도 웃기지만,
한가지 평소 갖고 있던 아쉬움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교회의 이미지로서 박수치고, 울고 하는 장면을
외국인들이 쉽사리 이해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교회, 종교, 하나님 앞에서 모두다 평등하고 모두다 같다면,
우는 것, 그리고 소리부르짖으며 기도하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마치 그것이 성령을 입은 것이고, 은혜를 받은 것인양 규명짓는 순간,
그것을 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경계를 짓는 행위가 되고, 결국에는
배타적인 모습이 될 수 밖에 없다.

울지 않고, 부르짖지 않는다고 하여서, 그 사람이 상처입지 않은 영혼이 아니고,
방언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성령을 입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을 대놓고 칭찬하고, 높게 사는 행위를 하는 순간, 종교는 따돌림을 행하는 것이 된다.

5. 용서와 구원의 딜레마
전도연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고 그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릴려고
직접 교도소로 찾아간다. 그리고선 용서하고자 이야기를 꺼내는데,
그 범죄자는 스스로, 직접 하나님께 용서 받았고 구원 받았노라..
그 이후에는 맘의 평화가 왔다고 이야기한다.

나같아도, 아니 성자라 하여도, 그 순간에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용서하기 전에 본인 스스로 회개하고 용서 받았다고 한다면...
도대체 용서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은 찾는자 모두 용서 받는다면,
이 세상에 살아남은 자의 분노와 원한은 누가 참아야 하며,
정의는, 법은 어떻게 누가 지킬것인가 하는 딜레마가 남게 된다.

누구라도 범죄를 짓고 스스로 회개하고 스스로 구원받아버리면,
누가 단죄하고, 누가 그 원한을 해소하여야 하는가 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6. 유괴, 납치 영화 그닥 좋지 않다.
흠 솔직히 그놈목소리, 그리고 이 영화..
모두를 보면서 느낀 생각은, 기술이 발달하였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과, 발생한다면 필시 잡힌다는 식의
권선징악의 메시지도 보여주어야 한다.

그놈목소리, 그리고 밀양까지 이어지는 유괴와 협박, 그리고 살인의 스토리는..
앞에서 말한 CTU의 뛰어난 기술력은 아니어도, 휴대폰 위치추적과 발신자추적
그리고 다양한 방식의 기술력을 동원해서라도 1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우리 나라가 최선을 다한다는 정도는 보여주어야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답답한게 아마 이것 때문이리라.. 휴..


전도연 씨의 깐느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을 축하하며,
이창동 감독과 송강호 씨가 멋지게 함께 만들어낸 영화 밀양은,
인간과 종교, 그리고 사회에 대한 멋드러진 해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유괴라는 테마만이 다소 역겹긴 하지만,
그건 영화가 아니라 이 사회에 대한 메스꺼움이긴 하지만서두...

De R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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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U, Counter-Terrorist Unit이던가?
24라는 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가 흔히 아는 FBI도 아니고 CIA도 아닌
CTU라는 조직을 알게 되었다. 대테러본부 정도라고 해석하는 것이 적당할까?

사실 이 드라마, 시즌 1과 시즌 2를 볼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재밌다고 봤다.
시즌 3는 생화학무기를 이용한 테러가 주된 내용인데, 사실 이 부분을 보면서
우리가 이런 위험에 맞닥뜨리면 과연 대한민국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상대방의 통화 위치를 추적하며, 상대방과 교전할 때에는 위성의 적외선 카메라를 동원하여
주변에 위치한 사람들의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며, 필요할 때에는 하시라도 지하철을
세우기도 하며, 때로는 교통 카메라까지 직접 접속하여 콘트롤 할 수 있다는 것에서...

우리의 대테러 능력이 저 정도 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생화학무기가 흘러나와서 테러가 일어나면 아마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지 모른다.

점점 아무 이유없이 범죄가 일어나는 "막가파"식 무동기의 범죄가 판을 치게 되면,
머지 않아서 지하철 환기구에 생화학 무기를 풀어버리거나 또는 달리는 지하철에서
위험가스를 퍼뜨릴지도 모른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겠지..

세계의 경찰이라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드라마, 그리고 그들의 시스템...
우수하다거나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 우리랑 수사 체계나 시스템적인
지원 부분이 차이가 난다. 아쉬울 뿐이다.

p.s. 24에서는 주인공 잭과 데이비드 팔머 대통령이 종종 통화한다. 우리나라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 아닐까 싶다. 일개 정보요원과 대통령간의 직속 통화라...

p.s.2.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한화 사건에서, 통화내역들을 각 통신사로부터 받았는데
그 문서를 통일된 데이터로 만들기 위해서 형사 3명 정도가 엑셀로 옮겨서 입력하는
노가다를 했다는데.. ㅡㅡ;; 이게 우리의 과학 기술력이다. 기술이 없을때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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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제목 : 우아한 세계
▶ 감독 : 한재림 (연애의 목적)
▶ 출연 : 송강호, 박지영, 오달수...


조직에 몸담은 가장의 꿈...
주인공 강인구는 조직의 중간보스급으로, 회장이라는 최고 보스와 노상무라는 회장의 동생되는 사람과 함께 일하며 살아간다. 노회장과 노상무는 부를 가지지만, 중간보스라는 인구는 회장의 사랑과 관심을 받긴 하지만 노량진의 물도 잘 나오는 높의 곳의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들은 외국 어딘가로 유학보내고, 아내와 딸 이렇게 살고 있다. 수도가 안나와서 아내가 머리를 못 감을때도 있고, 딸은 아버지의 모습을 혐오하며 자신의 일기장에 칼에 맞아 죽어버리라는 글까지 쓴다.

강인구는 아내를 위해서, 물도 잘 나오는 빌라를 구하려고 하고, 딸을 위해서 유학경비도 마련하고자 열심히 산다. 중간보스로서 최선을 다하면서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아버지, 그리고 나 역시 강인구로 살아간다...
이 영화가, 코미디/느와르 영화로 분류된 것은 적잖이 아쉽다. 이건 솔직히 휴먼코미디이고 드라마이다. 당신의 삶은 강인구랑 다른가?

조직의 최상층의 노회장과 노상무는, 매일 골프에 법인카드를 흥청망청 써댄다. 당신은 고작 매달 25일이나 15일에 들어올 월급을 바라보며 옆의 동료를 깔아뭉개고, 조직에서 조금이라도 튀어서 앞서 나가보려 한다.

때로는 회사의 지시로, 영화에서처럼 이권을 챙취하려하고 무언가 의미있는 숫자를 만들어 그것을 통해 내 자신의 영달, 그리고 내 가족의 영달을 이뤄내려 한다. 어느 날쯤, 나이들어 힘들고 지칠때쯤엔, 노상무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칼로 당신을 담구려 할지 모른다. 좀 쉬고 이제 그만 일을 놓으라고..

아내와 아이들, 철좀 들어라...
어느 기사에선가 그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외국에 가족을 다 유학보내고 홀로 한국에 남아서 돈을 벌던 기러기 아빠가 홀로 쓸쓸이 죽어갔다는..

이 영화에서 송강호가 죽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혼자 남아 쓸쓸이 아이들과 아내가 보내온 비디오테잎을 보면서 라면을 먹는 장면에서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가 될 우리들의 자화상이 저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맘이 간절했다.

외국 유학은 극단적인 케이스일 뿐이다. 우리네 삶에서도 그런 모습을 충분히 볼 수 있다. 후후 사실 이걸 아내와 아이의 잘못이라고 말하기엔 정말 뭐하다. 결국 우리네 삶이, 아니 조직에 몸담고 있는 아버지와 가정에 몸담고 있는 어머니와 아이는 서로 융화되려면 많은 부대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결국 둘다가 문제구만.. ^^

로베르토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아이를 위해서 전쟁의 상흔을 남기지 않으려하고, 비누로 만들어버렸다는 유태인 처형장을 걸어가면서도 당신의 아들을 위해서 웃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강인구도, 아내와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본인은 쓸쓸히 홀로 죽어간다.
나찌에 의해서 비누로 변해버린 것이냐, 자본주의의 조직에 의해서 당뇨병에 걸려 죽어가는 것이냐... 영화는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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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opsis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너무나도 평범한 남자 프랑수아(베르나르 캄팡)는 모든 남자가 선망하는 아름다운 여인 다니엘라(모니카 벨루치)에게 한 달에 10만 유로를 주는 대신 400만 유로의 복권 당첨금이 다 떨어질 때까지 같이 살자는 제안을 한다. 이 제안을 받아들인 다니엘라는 자신을 부드럽고 정중하게 대해주는 프랑수아에게 차츰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그러나 사실 다니엘라는 암흑가 보스인 샤를리(제라르 드빠르디유)의 여자. 그들의 관계를 알게 된 샤를리는 다니엘라를 사이에 두고 프랑수아와 흥정을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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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처음에는 리스트에서 보게 되었다.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 라는 다소 어이없는 번역으로 개봉해서
소리 소문도 없이 2006년 여름 대한민국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다.

모니카벨루치의 관능적인 몸매와, 연극같은 구성, 그리고 희극같은
성격의 대화들의 연속에서 나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쉬운 불어를 배우들이 써대니 가끔씩 들리는 대화 문장의
구성 하나 하나가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 했던 것 같다.

창녀인 다니엘라(모니카벨루치)를, 프랑스와가 다가가서,
복권이 당첨되었다며 매달 10만유로씩 줄테니 같이 살자고 제안한다.
돈에 그녀는 이끌렸다가, 나중에는 그 돈이라는 것이,
아니 정확히는 로또에 당첨된 사실이 없다는 것을 알게된 후에도
프랑스와를 좋아하게 된다.

영화는 내내, 이런 메시지를 던져준다.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가..
물론 때로는 허상을 보고 사랑할 수도 있지만,
결국 남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섬세한 손길, 따뜻한 마음 만이
남는다는 것을 은은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소 야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 영화지만
나름 프랑스 영화다운 재미를 보여주고,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프랑스와와 다니엘라가 맑은 날씨에 창문을 열어두고
식탁에 앉아 두손을 맞잡는 장면에서는, 창문 멀리
몽마르트언덕의 사크레쾨르성당이 보이고...
은은한 음악과 함께 두 사람이 쳐다보는데...

인생에서 Combien tu m'aimes? 라고 물었을때,
400만 유로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것
그것 자체가 행복인 것이다. 맑은 날씨의 푸르름처럼 말이다.

p.s. 오늘 누군가가 같이 퇴근하면서 이런 한탄을 하던데..
왜 갑자기 내 인생의 목적이 돈이 되었지라는...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숙연해야 했었다. 집에 걸어오는 발걸음이
그렇게 무거울수가 없었다. 나도 인생에, 아니 다들 인생의 목적이
돈이 되어가는 세상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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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감이 없잖아 있다. 남들 다 읽고 베스트셀러였던 책을 이제서야 읽고서는 서평을 쓴다는 건, 어찌보면 조금 부끄럽기까지하다.

남들 다 읽었던 이 책을, 굳이 읽지 않았던 이유는... 난 이런 경영서적 특히나 삶의 태도에 관련한 책들은 읽기도 전에 혐오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다종다양한 인생 관계를 하나의 문장으로, 한 권의 책으로 조언하고 이끌어 간다는 것은 얼마나 오만한 자세인가 싶어서 그런 책들은 아예 읽지를 않는다.

이 책도, 여러 신문의 서평을 통하여 익히 알고 있었고, 인간관계에 관한 글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더더욱 읽기 싫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을 읽도록 권유받고서도, 이 책을 손에 쥐고서도 읽기 싫어서..
마치 이런 태도로 읽었던 것 같다. 그래.. 글쓴이 너는 얼마나 제대로 사는가.. 그래 한번 두구보자 하는 마음자세였던 것 같다.

이 책을 통독하고 나서는, ㅋㅋ
생각이 바뀌었다고 고백해야겠다.

인간관계(Rapport)에서 칭찬을 하라는 메시지는 아니었다.
긍정적 사고 전환을 통한 동기부여가 핵심이었고..

나는 그 가운데서, 이런 메시지를 읽었다.
어차피.. CEO가 아닌 다음에야 누구나 피고용인인 것이다.
Salary를 받아서 먹고 살고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회사의 목표 때문에, 실적 때문에...
뒤통수 때리기 식의 고통주기가 아닌.. 서로 즐겁게 동기부여하며
얼마 살지 않을 인생 즐겁게 사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는 관점에 따라서는,

사회주의자는... 노동자들의 피억압의식을 묽게하며, 자본가들의 생산에
기여하는 그런 책이라고 할 것이고..
자유기업원 같은 자유주의자들은, 이런 책을 통하여 자기 동기부여만이
경제가 살 길이라고 할 것이다.

나같은, 생각 없는 아해는.. 이 책을 보며..
부처나 예수가 생각하는 그런 자비로운 삶을 통하여
어차피 고통받는 인생 서로 해피하게 서로 아름답게 살아가자는
메시지로 읽었던 것 같다.

우리 팀원들, 친구들, 가족들 모두에게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말만 해서.. 부디 죽을때는 서로 웃으며 죽고 싶다.

어느 영화에선가,
관 속의 시체가 씨익 웃고 있는 것을 본적 있는데..
내 주변 모두가 그렇게 죽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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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좀 도발적이네 ㅡㅡ;;

영화 초대권이 생겨서, 오래된 정원을 보러 갔다. 공짜 영화라면 또 가야하는게..
2006년말부터 사실 우리나라 영화들 소재가 고갈되었다. 재미없다라는 말이
많기도 했거니와 나 역시 극장에 들어가서 본 영화들이, 너무나 재미없고
고리타분하고 점점 유치해지고 고리타분해져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조금씩 떨어져가는 1월 4일날 밤에
사람도 별로 없는 영화관에서, 오래된 정원을 보게 되었다.

뭐랄까..
감정의 오버랩이라고 해야 하나?
붉은 기를 보며, 피가 들끓지 않으면 안된 것처럼 살았던 때가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전경들을 향해서 목소리가 찢어져라 외치며 덤벼들때도 있었던 것 같다.

그 시절 나보다 치열하게 싸우던 사람들 가운데는,
나중에 내가 변절하자 비난하던 사람도 있었고,
내가 차라리 열심히 공부해서 인권 변호사가 되자는 말에
'혁명만이 길이다'라고 외치던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 하나 둘, 지금은 시간이 흘렀는지
붉은 색은 와인색보다 더 옅어지고
이제는 하나둘 자기 살 길을 찾아가고,
그 시절 우리가 비난하던 그런 공안검사가 되어서
서슬퍼런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염정아의 말처럼,
"인생도 길고, 역사도 길다"

내 한 몸 불질러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은,
차라리 그 목숨 버릴 각오로 더 질기게 살아간다면
더 크게 변화시키지 않을까?

염정아랑 잤던 학생처럼,
어쩌면 다른 길로 가서 "인권변호사"가 되는 게..
더 인권을 위해서 좋은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더라..

내가 뭔소리를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하는지..
회사에서, 일기를 쓰다니 ㅋㅋ

p.s. 우리 회사도 글구보면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참으로 불쌍한 회사란 말야.. 노조 만들어야 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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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헤니

Mr. 로빈 꼬시기를 오타를 쳐서 "고시기"라고 한 사람이 있었다.
ㅋㅋ 난 그걸 Mr. 로빈 거시기로 읽었고,
말 그대로 MSN 대화 내용을 정리하자면,
"오빠 나 Mr. 로빈 거시기 보고 싶어"가 되버린거다..

Anyway. 근자에 몇몇 신문에서 11월, 12월의 한국영화 특수가
사라져버렸다는 우려섞인 기사가 있었다.

좋은 한국 영화들이 많은데, 수능 특수, 연말 특수가 생기지 않는다는
그런 식의 이야기를 펼쳐가고 있었다.

이번에 Mr. 로빈 거시기를 보고 나서 느끼는 것이지만,
아주 아주 착각은 자유라는 것을 100% 느낀다.

지루한 구성과, 어떻게든 100분은 넘겨야 욕은 안먹을까봐
느릿느릿 풀어나가는 이야기들, 엉성한 스토리
무엇보다 엄정화의 책읽는 듯한 목소리와
다니엘헤니의 어이없는 사랑학 강의(?)


마치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이, 착하게 살기만 하면,
아니 상대방에게 행복을 주기만 하는 여자들은
바보인 것처럼 그려놓은 그런 영화다.

때로는 사랑이란, 상대방에게 배려하고 기쁨을 주는 것만으로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인데 말야..

차에서 내릴때 차문 열어주고,
쇼핑할때 여자가 고른거 남자가 다 내고
밥 먹을때마저 남자가 내야 한다는 그런 사고를 가진 여자를
남자들이 좋아할 것이다.. 남자들이 애가 타 할것이다라는 식의

어쩌면 지나치게 편향된 시각을 100분 가까이 보여주는데,
지루해 죽는 줄 알았다.

한국영화, 갈수록 베스트극장이 되어가고
주말연속극이 되어가는데 이러면... 늬들 계속 망한다..

정말 돈 아깝더라..

당분간 영화 자제하련다. 다운받아 보고말지..
이 영화 형편없이 만드는 개나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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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품을 접하다.
내가 명품이라는 것을 처음 접한 것은,
아마도 대학교 1학년때였던 것 같다. 그때까지는 나에게, 패션이나 트렌드 이런 단어는
그냥 아무런 의미없는 조사에 불과했던 것 같다.

20여년간을 어머니가 사주신 옷만 착실하게 입고,
내가 입고 싶어하는 브랜드나 신발이 딱히 있지 않았다.
(아마도 어렸을적부터 브랜드만 입히셨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난 라코스테, 아놀드파마, 나이키, 아디다스, 푸마 이런게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며
자랐고 그것이 브랜드라고 의식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항상 그런 옷만 입고 자랐는데, 나중에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보니
나 역시 동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명가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프라다는 그냥 브랜드일지도 모른다)

대학와서 여자애들이 들고 다니던, 펜디나 프라다를 보면서
난 저것이 왜 명품일까.. 그 핸드백 하나에 기백만원을 한다는 걸 들으면서
속으로 어이없어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대학 1~2학년때에는 "명품 = 사치, 허영"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

2. 비싼 것은 그만큼의 역할을 하는 거다.
어머니와 이런 논쟁을 한 적이 있다.
9900원짜리 티셔츠도 좋은데 왜 이렇게 비싼 티셔츠만 사시냐고..
언젠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셨던 티셔츠가 비싼 걸 두고 내가 한 말인데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저렴한 것은 한철밖에 못입지만, 브랜드가 있는 것은 A/S도 되고
몇년은 입을 수 있다는 어머니의 말에 큰 충격을 먹었다.

어쩌면.. 시장원리에 따라서 브랜드는 비싼게 아니라 적절한 가격을 형성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에게 스며들었다. 충격이었다.

3.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주인공 앤 해서웨이(앤디 역)는 노스웨스턴대학을 나와서 스탠포드 로스쿨을 포기한
재원이라고 설정이 되어 있다. 그의 머릿속에는 자신감과 지적 충만함이 가득하다.
그런 그에게 명품으로 몸을 휘감고, 마른 몸을 유지하며,
소득에 걸맞지 않게 사는 여성들이 얼마나 하찮게 보였겠는가...

그리고 그가 취직하게 된 RUNWAY라는 잡지에서,
그런 사람들로 가득한 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난 사실 중간에, 스탠리 투치(나이젤 역)가 나와서 하는 대사를 보며 충격을 먹었다.
잠시 거쳐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너에게 무슨 칭찬을 바라는 것이냐는 식의
충고 아닌 충고를 듣고 놀랬다.

뭐라고 해야하나.. 내가 전에 들었던 그런 말이었다.
G마켓이라는 공간에서 잠시 산업기능요원으로 지나갈 너에게
회사가 무엇을 해주길 기대하느냐는 누군가의 말로부터 나는 변화하려고 노력했었다.
아니 아직도 그네들이 보기에는 변화하지 못했겠지만서두..

4. 각자 보는 눈이 다르다.
영화를 보면서 각자 보는 생각이 다르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명품이나 사치와 지식의 경쟁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하고
어떤이는 사랑과 직업에 대한 갈등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하고,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모 집단에 대한 구성원의 갈등에 초점을 두고 보았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일지라도,
그가 속한 구성 집단에서 융화되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다면,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물론 그렇다고 자신의 색을 버리고 무조건 악마가 되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앤디처럼 도도하고 자신감있게 살면서 기존의 구성원의 아이덴티티를
무시하며 사는 게 과연 맞는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앤디가 입고온 티셔츠가, 2002년도쯤에 명품 브랜드에서 런칭해놓은
디자이너들의 결실인데, 그건 입고서 마치 저항하듯이 나타났다는
메릴스트립(미란다 역)의 말과 비슷한 생각이다.
즉... 세상 아래 새로운게 없고, 잘난 것 없다는 것이다.

기존의 헤게모니, 아이덴티티를 무시하려면 우선 정확히 알고 제대로 알고
덤벼야 제대로 덤비는 것이다.

우린 누구나 프라다를 입기를 꿈꾼다.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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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목 : '라디오 스타'
감    독 : 이준익 (왕의남자, 황산벌, 달마야 놀자, 아나키스트, 간첩 리철진)
주    연 : 안성기(박민수역), 박중훈(최곤역)

1. 큰 기대를 했지만, 조금은 아쉬웠던...
박중훈의 연기가 그다지 가슴에 와닿지 않아서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기대가 컸었던 것일까.. 다들 좋다던 라디오스타를 보고나서의 느낌은..
뭐랄까.... 큰 감동을 줄것이라 생각했던 선물상자에 알고보니 내가 알고있는 선물만
들어있어서 크게 웃어줄수 없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해야할까?
아무튼 영화 "타짜"를 보고 실망을 했었는데, 사람들이 "라디오 스타"는
재밌다고 하길래 봤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대표적 추석맞이 대작영화, 타짜와 라디오스타.. 흠..
내 주관적인 느낌은 10점 만점에, 6점과 7점 정도? ㅋ 너무 박한가?

2. 박민수도 그 나름의 인생에서는 주연인 것이다.
위의 사진은, 영화에서 내가 두번째로 맘에들어했던 장면이다.
사실 가장 맘에드는 장면은, 버스에서 눈물을 머금으며 김밥을 입에 구겨넣는
장면이었는데, 아쉽게도 그 사진은 구할수가 없었다.

안성기는 얼핏보면, 내가 가장 많이 따랐던 막내외삼촌과 닮았다.
내가 가장 닮고 싶어하며, 형처럼 그리고 스승처럼 따랐던 사람이 어느날 결혼을 했었다.
항상 나랑 놀아주고, 나를 생각해주던 사람에게, 사랑하는 가족이 생겼고
삼촌이라는 언덕에 비벼대던 난, 그 가족이라는 방해물이 매우 서운했었다.

아직도 내가 느꼈던 그 서운함이나 그 아쉬움은 이야기해본적 없지만서두,
삼촌이 본인의 가족에게 사랑을 베풀기 시작하면서 나와 이야기하는 시간이나,
내 생각을 들어주는 시간이 줄어든 것 같아 많이 아쉬웠던 적이 많았던것 같다. 후후...
(삼천포로 빠졌으니 이제 돌아와야지)

누군가의 글에서 본 것처럼, 항상 조연을 연기하는 조연 배우에게도,
본인의 삶 자체는 그 사람이 주연이듯이 누구나 삶의 주연을 사는 것이다.

안성기도, 박중훈의 매니저로 20년 가까이 살고
더 끔찍한 것은 박중훈 팬클럽 초대회장을 했던 여성과 결혼을 해서 살고
항상 박중훈의 우산이 되어주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안성기는
박중훈의 매니저로서의 주연을 살고 있는 것이다. 멋지다.

영화 중간에 내가 눈물을 흘린 이유는, 박중훈이나 안성기가 주는 우정이나 뭐 이런
감동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서 오는 진솔한 느낌이라고나 해야할까..
그런 것에서 오는 잔잔한 감동 때문이었다.
자신이 주연이 되는 이 삶의 한복판에서 가끔 다가오는 어려움의 파도나 고난은,
연극의 클라이막스쯤 된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나 싶다.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거면, 왜 굳이 힘들게 사는가.
남들과 조금이라도 달라야 내 삶의 Identification이 명확해지지 않겠는가 말이다.

3. 가끔은 말이다. 실패한 삶이 할 이야기가 많다는 걸 느낀다.
흔히 3142라고 불리는, 3학년때 1차붙고 4학년때 2차붙고 군대 면제받고 판사생활하다가,
지금은 부장판사하면서 사는 사람에게 인생의 낙은 어떤게 있을까.

가끔 내 삶의 방향이나 목표를 확정짓고 나면,
그 뒤에는 뭘하지 하는, 자문자답을 할 때가 있다.

정말 그 뒤에는 허탈해서 아니 뭘 할수 있나 싶다.
가끔은 실패해서 고통스럽고 어려워야 나중에 더 노력하지 않을까?

후후 패배자의 비겁한 자위라고? ㅋㅋ
그럴지도 모르지.. ^^

- 여수까지 잘 도착했는데 어제 노느라고 글 못썼다.
- 서울에서 여수까지 정확히 5시간 걸렸다. 버스로..
- 진주로 해서 돌아오는데 고속도로 안 막혔다.
- 버스가 앞차를 몇번이나 위협하더라.. 안비켜준다고.. 애가 타고 있었는데.. 쩝
- 추석이라고 여기저기서 문자 오는데, 모르는 번호가 많다. 이럴때는 정중히 씹는다. ㅡㅡ;
- 낼은 머리를 잘라야지..
- 올라갈 버스표도 구매해야겠군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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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목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감    독 : 송해성 (라이방, 파이란 만든 감독이라네.. 다 보다가 잠든 영화들 ㅡㅡ;)
주    연 : 이나영(문유정), 강동원(정윤수)
원작소설 : 공지영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1. 영화를 보러가며
8시 45분에 허겁지겁 도착해서, 영화관에 들어섰다.
이나영과 강동원이라는 CF를 주력하는 배우들이 연기하는 영화에 대해서,
사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언론과 예고편에서 보여지는
'사형수와의 사랑 영화'라는 문구에 더더욱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 영화를 보기 시작할 때는, '이런 CF급 배우들이 하는 영화를 봐야한다니'라는 생각을 갖고
보기 시작했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감독과 배우들,
그리고 공지영 작가에 대해 존경심을 갖게 되었고 마음속 깊이 박수를 보내게 되었다.


2. 문유정과 정윤수는, 같은 삶을 살았다.
주인공 문유정은, 부잣집에서 태어나서 부유하게 자라나게 된다.
유학도 다녀왔고 대학교수 자리에, 차도 XG그랜저를 몰고 다니면서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산다.
어느날 운동하다가 태양을 보며, 아침이 싫다며 자살을 시도하지만 살아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15살에 사촌오빠에게 강간을 당했었고, 친어머니는 집안 창피하다며,
입단속을 시키게 된다. 그녀는 그때부터 어머니를 증오하게 되었고, 버려짐에 대해서
항상 자살로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보려 한다.

사형수 정윤수는, 가난하게 태어나 힘들게 자란다.
유학은 커녕, '대학 교수'도 직접 본 것은 처음이라는 그런 삶을 사는데,
어릴적 남동생을 데리고 재혼을 한 어머니를 찾아갔다가, '나도 좀 살자'라는 어머니의
싸늘한 목소리를 뒤로 한채 뒤돌아 서게 된다. 어머니로부터 그도 버려진 것이다.
윤수는 남동생과 같이 앵벌이를 하다가, 동생이 어느날 차가운 지하철 바닥에서 죽게된다.
그 역시 어머니와, 남동생에게 버려진 외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게 된지 얼마 안되어,
300만원의 병원비 때문에 우연치 않게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재판에서도 문유정처럼, 죽음을 선택하기 위하여 전부 자신의 범행이라고 자백해버린다.
윤수 역시 아침의 태양이 고역스럽긴 마찬가지이고, 매일 매일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3. 문유정과 정윤수는,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문유정은, 정윤수와 다르다.
자살을 선택했고, 자살은 언제든 되돌릴 수 있다.
병원에서 링거병에 담긴 액체를 맞으며 되살아나고, 그의 어머니 역시 쉽게 죽지 못한다.
어쩌면 그에게 있어 자살은 하나의 이벤트에 다름 아니다.

정윤수는, 사형을 선택했고,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문유정이 그의 어머니에게 사과하듯이,
그 역시 자신이 죽인 파출부의 어머니에게 사과하지만 사형은 되돌릴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죄를 뉘우쳤지만 그에게 있어, 그가 선택한 사형은
문유정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정윤수와 같이 범행을 저지른 사람에게 가서
문유정이 설득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사형은 집행되고 되돌릴 수 없어진다.
"네가 죽는다고 죽은 내 딸이 살아난다면 몇번이고 죽이겠지만..."
이 대사는 피해자 가족들이, 사형수를 용서하면서 자주 하는 말이다.
이 영화에서도 등장한다.



4. 사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어본다.
사형제도에 대해서 난 찬성론자도 반대론자도 아니다.
피해자 측면을 생각하면 찬성하지만, 막상 어제와 같은 사형 집행장면을 보면 반대론자가 된다.

극악무도하게 일가족을 죽이고, 남편이 보는 앞에서 와이프를 강간하고,
가족들을 차례대로 보는 앞에서 죽이는 놈은 능히 사형을 면할 수 없어야 한다.
아니 사실 그것은 그 사람의 인권보다, 우리 사회를 보호해야 할 측면이 더 크기 때문이다.
아니 사형이건, 빠삐용의 알카트로스섬처럼 아예 격리시켜야 할 필요성은 있다.

하지만, 정윤수와 같이 사회의 버려진 삶을 살면서
그리고 같이 범행을 저지르고선, 마치 본인이 전부 범행을 진행한 양
진술해버린 경우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영화 중간에 나온 것처럼, 사형을 각오한 사람에겐 두려운 것이 없는 것이다.
자살을 각오한 "문유정"이 자동차를 막무가내로 몰듯이,
사형을 받은 정윤수는, 감옥내에서 꼴통으로 통할수 밖에 없다.

즉 브레이크 없는 벤츠처럼, 막무가내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명 죽인 사람이, 사형을 무릎쓰고 막무가내로 다 죽일 수 있는,
그런 범죄억제 효과는 사형전까지는 있을지 모르지만, 막상 가속도가 붙고나서는
없어지고 마는...

과연 우리는, 사형제도를 두어야 하는가?
윤수가 애국가를 부르다가 얼굴에 두건이 씌여지는데,
무섭다고 외치는데... 난 눈물을 흘리다 흘리다 소리내어 울뻔했다...
인간이 인간을 저렇게 죽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소도 도축장에 끌려가며 눈물을 흘린다는데, 교도관 두명이 사형수를 끌고가는 장면이
그보다 더 슬프지 않을 수 없는것 아닌가...


5. 영화를 보고 나오며..
CF 배우라고 생각했던 이나영과 강동원은,
대사가 유난히 많고 감정의 이입이 많아야 했던 이 영화에서 아주 제대로 해냈다.

씨네21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10점 만점에 6점이라는 가혹한 점수를 줬더구만..
아마도 사랑 영화라고 생각했을테고, 배우를 봤을테고, 감독을 봤겠지..
그들의 보기에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들고, 조지 포스터가 나와야 영화답다고 생각했겠지..

나에게 있어 이 영화는,
사람, 사형, 죽음, 가족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좋은 영화였다. 100점짜리..

간만에 영화 내내 눈물 흘리면서 영화봤다.
쌩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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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괴물』이 1000만 관객을 모을 것이라는 뉴스가 연일 떠오르고 있고,
어릴적 한강에서 괴물을 봤다는 것 하나로, 봉준호 감독은 또 하나의 히트 제조기가 되고 있다.

우리의 보수언론 조선일보는, 최공재라는 감독의 글을 빌어서
괴물의 흥행이 문화의 다양성을 주장하면서 스크린쿼터를 사수하는 한국 영화에 과연 도움이
될까하는 비난의 화살을 가열차게 쏴주었고, (기사 보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또 남들의 흥행열풍을 거스리지 못하고,
극장에서 표를 사서 보고야 말았다.

예고편이 항상 거대하고, 사람들의 평이 많으면, 은근한 기대감도 많은지라,
막상 영화가 100여분이 흐르고나서는, 지겹고 느슨하다라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스토리 전개의 느슨함과 지루함은, 마치 사람들이 반지의 제왕을 극찬할때
나 혼자 하품을 했던 그 지루함과 비슷한 그것이었다. 다른 무언가, 새로운 것이
바로 바로 자극이 오길 바라는, 나같은 자극세대에게는 그런 지루함과 느슨함은
영화가 재미없다라는 결론으로 바로 치닫기 때문이다
. (저런)

Anyway, 영화가 재미없고 있고를 떠나서,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한강에서 매점을 하는 서민,
아니 나같은 필부에게는 경찰도, 군인도, 언론도, 심지어 시민단체마저도
머나먼 구원의 손길이라는 것이다.

영화 장면에서 나오는 "경찰관의 반말 응대 장면"이나, "외국인 의사의 뇌 바이러스 강조장면"에서
우리네 서민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대사로 표현되는데, 너무나 가슴이 아리던데..
과연 1000만 관객 가운데 그런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쉬울 뿐이다.

자괴감과 비참함을 느끼면서 영화를 봐야했고,
봉준호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그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서러움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

대한민국에 사는 너와 나, 과연 권리위에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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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은 한번도 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춤을 추며 가사를 노래로 하는 것이, 그닥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다.

뮤지컬을 바탕으로 한, 영화 『시카고』, 『레이』등을 보면서
한번은 꼭 뮤지컬을 직접 가서 보고 싶다고 했는데,
이번에 좋은 기회가 생겼었다. 뮤지컬 맘마미아...
(정식 공연 시작전에 Pre-open 티켓을 20% 할인해서 팔았던 것이다 ㅋㅋ)

토요일 오후 늦게, 예술의 전당 오페라홀에서 즐겁게 보고 왔다.
맘마미아, 나중에 시간되면 독일에서도, 영국에서도 한번씩들 보고 싶다.
너무나 재밌는 뮤지컬이었다.

p.s. 그날 저기서 저렇게 사진 찍고 있는 것을, 도요선배가 봤나보다.
얼마전 통화하는데 저 장소에서 날 보았는데, 너무 정겹게 사진 찍고 있어서
피해주셨다는데 ㅋㅋ 세상 좁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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