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끼"를 보는 세 가지 시각...

2010.07.30 01:06
주의! 이 리뷰는, 자칫 스포일러 수준의 리뷰일 수 있습니다. 영화를 감상하시기 전에 보시는 것은 자유이나, 스포일러라고 비난하지는 말아주십시오. ^^


윤태호 작가의 이끼를 맨 처음 접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다음 메인의 포토뉴스 칸에 떡하니 있는 만화 스틸 컷 한 장이, 매주 그의 만화를 기다리게 만들었고 중간에 작가가 연재를 쉬는 날에는 나 역시 로그인해서 댓글로 작가를 욕할까 싶을 정도로 애간장이 탔었고, 중간에 잠시 몇 화는 마치 풍경 흐르듯이 지나갈 때가 있었는데, 그때 역시 작가에게 댓글로 욕할 뻔 했다. 그만큼 애가타게 기다리며 봤던 만화였다. 정말 인터넷 만화로서, 이 작가에게 돈 한 푼 지급하지 않고 이렇게 고급 만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었다. 이 만화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니, 정말 설레고 벅찬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만화만큼 재밌다는 사람과, 만화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람까지.. 적어도 나 역시 맨 처음 이끼를 보고나서 나올 때에는, "아 이 멍한 기분은 뭐지" 하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으니.. 그날 밤에는 혼자 앉아서 이끼 전 편을 다시 한번 만화로 훑었다. 그러고 나선, "아 영화가 많이 부족하네" 이런 평을 스스로 내렸었다.

오늘 밤, 다시 한번 영화 "이끼"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오늘은 정말 지난 번과 다른 시각, 다른 자세로 봤다. 아 이 영화 정말 쉽지 않은 영화이다. 특히나 만화에서 접할 수 없는 음향 효과, 그리고 화면 앵글, 사람들의 표정 변화, 눈동자 변화 등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철저히 속일 수 있었다. 영화 "이끼"는 만화 "이끼"와 다른 여러가지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

해석 1 - 이장 천용덕은 나쁜 사람이었고, 아버지 유목형은 피해자였으며 그 누명을 벗기기 위하여 아들이...
맨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었다.
아들 유해국은, 편향된 시각을 가진 검사로부터 "관상부터가 가해자"라는 평을 들었지만 결국 그 자신은 무고한 사람으로 규정되고, 아버지 유목형 역시 사람들을 감동하고 교화시키는 분으로써, 심지어 범죄자들에게 해꼬지를 당하면서도 묵묵히 자기 도양을 키워가는 존재이다. 아버지가 죽고나서 찾아간 마을에는 범죄자 출신과 형사 출신이 있고, 그들은 자신이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에 돌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선과 악의 대립 구도가 명확하다. 한 쪽은 많은 이들을 선교하고, 성경 말씀을 인용하고 범죄자의 핍박에도 굴하지 않는 선량한 사람, 그리고 그의 아들 역시 삐뚤어진 검사의 시각에서 무죄의 선고를 받고야 마는 올바른 사람..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비리형사와 전과자 출신... 너무나 대립구도가 명확하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엄청난 재산이 될 수 있는 땅이 이장 천용덕에게 이전되는 것까지 더해지면 우리의 눈에는 벌써 이렇게 결론내려진다.

더군다나 중간 중간 나오는 내용을 보면 유목형을 이용하여 이장 천용덕이 부를 축적하고 그걸 통해서 편하게 살고자 하는 것이나, 유목형을 괴롭히는 장면들을 보면 더더욱 이런 느낌이 강해진다.
가장 전형적인 선악구도, 대립구도를 그려낸 권선징악적인 영화로 보여질 수 있다.

해석 2 - 이장과 그의 무리는 짐승에서 인간이 되고자 노력하는 중이었고, 오히려 유목형은 그들을 "구분짓고 낙인"하는 사람이고 그의 아들은 그들의 "근성"을 건드린 침입자...
오늘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이다. 200억이 넘는 재산은 그 마을의 공동 소유이다. 몇번이나 "공동소유"에 대해서 검색하고 유해국 역시 아버지의 지분이 있기에 남아있겠노라고 한다. 하지만 그 많은 재산을 가진 이 공동집단에는 전혀 부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장 역시, 아침에 양치 후에 먹는 요구르트 하나, 그리고 고스톱 치면서 먹는 새우깡 부스러기 등이 전부이다. 우리는 어쩌면 자본주의의 익숙함에, 돈에 대한 욕심이 모든 화를 부르고 그 화를 부르는 주체가 나쁜 것이라고 규명지은 걸지도 모른다.

[1] 유해국은 검사가 그에게 그랬듯이 "관상부터 가해자"로 규명하고 마을 사람들을 대한다.
[2] 아버지의 죽음에는 무언가 비밀이 있고 누명이 있을거라 의심하기 시작한다.
[3] 모든 의심의 시작은, 불명확한 땅과 재산의 이전으로부터 기인한다. 마음의 의심에서 시작된 것이다.
[4] 땅굴을 발견하고 그것에 대해 캐면서, "전석만"의 집에 칩입하여 뒤진다. 칩입자는 유해국이다. 그 과정에서 전석만의 숨겨진 근성을 건드려서 그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만다.
[5] 전석만의 죽음에 대해 참지 못하는 하성규는, 유해국에게 자신의 집에 모든 비밀이 다 있다고 하여 유해국을 유인하는데 유해국은 그 때에도 아무도 없는 집에 칩입하여 뒤지기 시작한다. 유해국은 여기서도 침입자다.
[6] 모든 정황을 보면, 지극히 외지의 사람에게 어느 집단의 구성원들이 던질 수 있는 말들을, 유해국은 너무나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여기서 살기 힘들어" "서울가서 살아".. 심지어 "오늘 수퍼에서 자나" 라는 질문 역시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어서 그럴 것이라 여긴다.

이런 상황을 생각하며 이 영화를 보면, 정말 유해국은 침입자다. 검사처럼 관상(외관)으로 모든걸 결정짓고 이 마을 사람들을 아버지를 죽인 범죄자, 돈에 눈이 먼 사람들로 규정하고 의심하고 비밀을 캐려고 한다.

[A] 검사 역시, 이 마을에 도착하여 마을 이장을 보고서,  "난 당신이 싫습니다"라고 규정짓는다. 관상으로 유해국을 규정지은 자가 또 다시 외관으로 그 사람을 규정짓고야 만다. 유해국은 그 순간, 자신이 당했던 그 과거의 검사와 동일인이 되고 만다.
[B] 이장의 비밀이라는 것은, 결국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되기 보다 오로지 돈과 관련된 것들 뿐이다. 하지만 그 모아진 돈은 이 구성원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사용되었지 이장의 개인 축재를 위해서 사용되었거나 그런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탐욕 = 나쁜놈이라고 규정짓고 있다. 그 탐욕은 이 공동체의 존립과 유지를 위한 탐욕이었을 수 있다.

하나의 균질화된 집단에 어느 날, 다른 물질(유목형)이 침투했다. 그 물질은 기존의 집단을 비난하고, 죄인으로 규정짓고 항상 회개하라, 채소로 생식을 하자, 성매매를 하지 말자 등의 바른 소리로 그 기존 집단을 죄인으로 낙인한다. 그러던 순간 자신 역시 그 사람들을 죽이고자 하는 "근성"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마을에서 더더욱 소외되게 된다. 즉 다른 물질로서 존재하며 비난했던 존재가 그 스스로 그 집단과 다를 바 없음을 확인해준 순간, 더 이상 그의 존재 의미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의 죽음 이우에, 더 강한 다른 물질(유해국)이 침투하여 이 균질화된 집단을 흔들고 말았다. 그들의 숨겨진 범죄 근성을 건드려서 죽이고야 말았던 것이다. 마치 바이러스가 침투하였다가 실패한 이후에 더 강한 수퍼바이러스가 침투하듯이 유해국은 유목형의 아들로서 더 강하게 죄인을 규정짓고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가해자는 유목형과 그의 아들 유해국일지 모른다. 짐승에서 인간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선 긋고 낙인하면서 핍박한 것일지 모른다. 어쩌면 검사로부터 유해국이 듣고자 했던 "당신은 잘못이 없다"라는 말을, 그 마을 사람들 역시 유목형에게, 그리고 그의 아들에게 듣고 싶었는 것일지 모른다.

해석 3 - 영지는 유목형을 통해서 어린 시절 성폭행한 사람들에게 복수를, 유해국을 통해서 성폭행한 마을 사람들에게 복수를...
어린 시절 영지의 성폭행 사건을 유목형은 이장 천용덕에게 부탁하여 복수하게 한다. 삼덕기도원의 성경책에는 성폭행에 가담한 사람들의 이름이 있고 이를 조사하여 천용덕이 사적구제를 통하여 복수를 해준다.

어른이 된 이후에 유목형과 천용덕의 마을에 함께 있게된 영지에게 천용덕과 그의 일당들이 성폭행을 일삼게 되고, 유목형이 죽고난 이후에 영지는 그의 아들을 통하여 그들에게 복수하게 된다. 그의 아들에게 아버지에게 그랬듯이 삼덕기도원이 적힌 성격책이 놓여져 있고, 거기에는 "천용덕"이라는 이름이 적혀있다.

두 번의 복수 과정이 비슷하고 그 과정 역시 사적구제의 모습 그대로이다. 어쩌면 영지는 아버지를 통하여 이 사회에 대하여 복수하고, 그 아버지가 실패한 두 번째 집단에게는 더 강한 그의 아들을 통하여 복수한 것일 수 있다. 실제로 영지는 유해국이 하성규의 집에서 낫으로 베일뻔하고, 상처입고 도망가려는 것을 붙잡고 설득한다. 운전하며 그에게 "이 모든걸 해결할 사람은 당신 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영지가 바라는 해결이라는 것은 유목형의 억울한 죽음이 아니라, 자신의 복수이고 그 복수를 이뤄내기 위함을 이야기한 것일지 모른다.

부족한 결론...
한 편의 영화를 보면서, 갖가지 음향, 표정, 눈동자 등에서 다양한 생각을 해본다. 다만 꼭 한번은 반대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보기 바란다. 우리 스스로가 검사의 눈, 유해국의 눈으로, 관상학적으로 이미 넌 가해자, 나쁜 놈, 짐승이라고 여기고 보고 있지 않았는지 말이다.

칩입자는 오히려 유해국일지 모른다. 이장 천용덕의 마지막 대사처럼, "근성"을 건드리는 그 사소한 행동 때문에 범죄가 일어난다. 경찰들이 보기에는 "우스운" 일로도 범죄가 일어나는 세상에 유해국이 저지른 행동은 이미 그 선을 넘은지 오래다. "우리 아버질 당신들이 죽이지 않았을까요?" "이 땅굴이 있는데 이 집에 칩입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아무도 안계세요?"

누가 칩입자고, 누가 가해자인지, 그리고 이 영화에서 말하는 이끼처럼 산다는 것이 무엇일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어쩌면 이끼처럼 잠잠히 살고자 하는 마을주민-이장 천용덕과 김덕천, 전성만, 하성규-을 괴롭히는 건 유해국이나 유목형과 같은 이질적인 침입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이 영화,  꼭 소장하고픈 영화다.

p.s. 기억 나는 주요 장면들
- 영지가 주는 성격책 (천용덕에게, 유해국에게)
- 영지의 첫번째 복수에는 하성규 역할을 하는 김준배가 또 나온다.
- 불타죽은 하성규가 죽어가며, 갖고 나오던 것은 사진들과, 공부하는 책이었다-하성규집에도 비밀은 없었다.
- 인터넷 안될때 나오는 daum.net (다음 연재 만화였으니)
- 하림 닭 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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