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또다시 볼만한 영화, 추격자. 피해자들이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무참히 살해되고마는, 그리고 내가 언제든지 그런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극한의 공포감을 통하여 영화 보는 내내 긴장감을 극대화시켜준, 그리고 영화본 직후에는 "이 따위 영화가"라고 생각했다가 점점 생각이 바뀌게 만드는 괜찮은 영화다.
미국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한국판이라고 하면 오히려 감독이 서운해 할만큼 잘 만들었다!
저 화면에서 보다시피 이 영화도, 주인공인 보도방을 운영하는 전직 형사출신인 "엄중호"가 연쇄살인범인 "지영민"을 직접 잡는다. 공권력은 이 영화에서는 무기력함을 보여주고 때로는 무능함을 보여준다. 심지어 똥 맞은 시장에 대한 책임 회피 내지는 언론보도회피를 위해서라도 이 사건을 종결지어야 한다는 경찰 상관의 말에서, 공권력이란 인권이나 개개의 생명을, 자신의 자존심보다 무가치하게 생각한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이 영화의 밑바탕 그림 역시 공권력, 특히 검찰과 경찰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 묻어나온다.
(1) 주인공은 경찰에 협조를 구하고 본인이 찾고자하는 범인에 대해 같이 찾아줄 것을, 동참을 요구하다가 결국엔 스스로 나서게 된다.
(2) 경찰에 겨우 인계한 범인 역시, 어린 나이의 검사 영감께서, 폭행 흔적에 대해 되려 질책하며, 주인공을 폭행 혐의로 수배하라고 지시한다.
(3) 범인이 다시 범행현장으로 돌아올때, 여자 형사가 따라붙지만.. 구멍가게에서 망치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사람이 죽어나가도, 그거 하나 제지 못한다. 발견을 못한건지, 아니면 모른체 한 것인지..
열 명의 범인을 놓쳐도, 한 명의 무고한 시민이 희생되어서는 안된다는 법률 격언이 너무나 무색해진다. 우린 그런 Maxim에 의존하여, 자칫 한 명의 범인이 만드는 죽음을 방치할 수 있는건 아닌지..
범죄의 강도와 형태, 그리고 그 잔인함이 변화되어 가는 것에, 과연 법은 적응하고 있는 것인지..
회사에서 하는 일과 유관하다보니 이런 저런 소식을 듣는데, 어쩌면 영화 제작사, 배급사, 영화관 모두가 자초한 위기가 점점 현실화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혹자는 온라인으로 유통되는 불법 영상물의 범람이 영화관의 관객 감소를 초래한다느니, 경제 침체가 그런다느니 하는데.. 11년만의 관객 감소라면 경기침체 곡선과 크게 상응하지 않는 패턴이고, 온라인 유통되는 영화가 개봉/상영작 영화에 끼치는 폐해가 클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1) 생각없는 한국영화의 범람.. 부동산이 돈 되면 다같이 뛰어들듯 누구나 영화 만들어댄다. 지껄여대고, 써대면 작가가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아무 작품이나 만들어댄다. 내용도 없고, 철학도 없다. 그런 영화들, 이제 영화관에서 두어 번 보고나면, 안가게 된다. 아니 그런 영화들에 대한 정보는 개봉 즉시 온라인에서 가공되고 전파되어 성공할 수가 없다.
(2) 부담스러운 영화가격.. 영화 한편에 8천원이 무슨 부담스러운 가격이냐고.. 우선 통신사별 할인이 완전 폐지되었다고 스멀스멀 살아난다. 왜냐구? 공급과 수요곡선상, 5천원짜리 영화가 8천원이 되고나서 확실히 심리적 저항선이 커지고 있다. 말 그대로 "그냥" 볼만한 영화는 "참자"가 되어 버린다. 그러다보니 영화관으로서는 다시 자구책으로서 통신사와 힘들어도 다시 동거하게 된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영화관도 갈수록 많아지는데, 영화관 값은 내릴 생각도 없고 방법도 없다)
이따위 사족을 쓰려고 한게 아닌데.. 쩝.. 그냥 요즘 내가 맡은 팀이 힘들어하는데.. 그 가운데 영화관도 한 몫을 거들어서.. 영화관들.. 할인정책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었으면 한다.
문화상품이어서, 스크린쿼터 사수하여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상품의 질을 개선해서 스크린쿼터보다 더 좋은 안전 장치를 만들었다.
문화이면서, 분명히 "상품"인 것이다. "상품"은 잘 팔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황진이, 16세기에 살았던 21세기의 여인이라는 멋진 카피를 갖고 141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영화관에서 날 괴롭혔던 영화다.
사람도 없는 심야라서, 자리도 편했건만... 앞자리에 발도 올려보고, 허리도 쭈욱 곧게 펴고 봤건만 영화보는 내내,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기분이 그닥 좋지 않은건.. 이 영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순전히 내 탓일지도 모른다.
역사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이야기들을 간간히 풀어주고, 황진이가 벽계수에게 전한 시를 전달해주고, 화적떼가 된 "놈"이와의 사이에서 애틋할 뻔한 사랑도 풀어주고..
도무지 알 수 없는 내용들은 분절되고 파편화된 소재들을 연결시키느라 다들 머리가 아팠을 것 같다. 무언가 하나에 집중되지 못한 느낌을 갖는 것은...
왜 서경덕 선생을 찾아가서 그 생뚱맞은 선문답을 나눈 것이며, 벽계수와는 그냥 에피소드 형태로 지나가듯 그런 것이며, "놈이"가 차지에서, 화적으로 넘어가는 이야기 전개도 도약이 심하고..
뭐랄까.. 한 20부작 대하드라마로 만들어야 할 내용들을, 141분에 한껏 녹여보려고 하니.. 이것도 넣어야 될 것 같고 저것도 넣어야 될 것 같았나보다.
나에게는,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는데, 각자 음식들이 맛도 없는데 많기만 많아서 괴로웠던것 같다.
21세기에 본, 16세기 소재의 최악의 영화였다. 각 요소들이 따로 노는 비빔밥 같은... 한국 영화의 침체기라고, 할리우드가 영화관을 평정했다고 기사 쓰지마라.. 이런 영화 있으면 나같아도 안본다.
p.s. 아참 일기 제목은 이런 글 쓰려고 한거 아닌데 흥분했나보다. 이런 영화도 수용하고 좋아라하는 관객이 되어야 하는데 난 아닌가보다. 일본처럼 인구수가 1억 넘으면 이런 영화 좋아라하는 마니아 생기겠지..
과다한 아웃포커스를 이용한, 비주얼에 치중한 영화... 사운드는 마치 녹음실에서 재녹음한듯한 현실감 떨어지는 사운드.. 유지태, 송혜교의 어설프고 느낌없는 대사 진행과 연기.. 어느 것 하나.. 맘에 드는 것 없는데.. 이런 것 좋아하는 사람 생겨야 문화의 다양성이 충족될 것 같은가?
▶ 영화제목 : 우아한 세계 ▶ 감독 : 한재림 (연애의 목적) ▶ 출연 : 송강호, 박지영, 오달수...
조직에 몸담은 가장의 꿈... 주인공 강인구는 조직의 중간보스급으로, 회장이라는 최고 보스와 노상무라는 회장의 동생되는 사람과 함께 일하며 살아간다. 노회장과 노상무는 부를 가지지만, 중간보스라는 인구는 회장의 사랑과 관심을 받긴 하지만 노량진의 물도 잘 나오는 높의 곳의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들은 외국 어딘가로 유학보내고, 아내와 딸 이렇게 살고 있다. 수도가 안나와서 아내가 머리를 못 감을때도 있고, 딸은 아버지의 모습을 혐오하며 자신의 일기장에 칼에 맞아 죽어버리라는 글까지 쓴다.
강인구는 아내를 위해서, 물도 잘 나오는 빌라를 구하려고 하고, 딸을 위해서 유학경비도 마련하고자 열심히 산다. 중간보스로서 최선을 다하면서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아버지, 그리고 나 역시 강인구로 살아간다... 이 영화가, 코미디/느와르 영화로 분류된 것은 적잖이 아쉽다. 이건 솔직히 휴먼코미디이고 드라마이다. 당신의 삶은 강인구랑 다른가?
조직의 최상층의 노회장과 노상무는, 매일 골프에 법인카드를 흥청망청 써댄다. 당신은 고작 매달 25일이나 15일에 들어올 월급을 바라보며 옆의 동료를 깔아뭉개고, 조직에서 조금이라도 튀어서 앞서 나가보려 한다.
때로는 회사의 지시로, 영화에서처럼 이권을 챙취하려하고 무언가 의미있는 숫자를 만들어 그것을 통해 내 자신의 영달, 그리고 내 가족의 영달을 이뤄내려 한다. 어느 날쯤, 나이들어 힘들고 지칠때쯤엔, 노상무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칼로 당신을 담구려 할지 모른다. 좀 쉬고 이제 그만 일을 놓으라고..
아내와 아이들, 철좀 들어라... 어느 기사에선가 그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외국에 가족을 다 유학보내고 홀로 한국에 남아서 돈을 벌던 기러기 아빠가 홀로 쓸쓸이 죽어갔다는..
이 영화에서 송강호가 죽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혼자 남아 쓸쓸이 아이들과 아내가 보내온 비디오테잎을 보면서 라면을 먹는 장면에서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가 될 우리들의 자화상이 저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맘이 간절했다.
외국 유학은 극단적인 케이스일 뿐이다. 우리네 삶에서도 그런 모습을 충분히 볼 수 있다. 후후 사실 이걸 아내와 아이의 잘못이라고 말하기엔 정말 뭐하다. 결국 우리네 삶이, 아니 조직에 몸담고 있는 아버지와 가정에 몸담고 있는 어머니와 아이는 서로 융화되려면 많은 부대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결국 둘다가 문제구만.. ^^
로베르토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아이를 위해서 전쟁의 상흔을 남기지 않으려하고, 비누로 만들어버렸다는 유태인 처형장을 걸어가면서도 당신의 아들을 위해서 웃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강인구도, 아내와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본인은 쓸쓸히 홀로 죽어간다. 나찌에 의해서 비누로 변해버린 것이냐, 자본주의의 조직에 의해서 당뇨병에 걸려 죽어가는 것이냐... 영화는 똑같다.
Synopsis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너무나도 평범한 남자 프랑수아(베르나르 캄팡)는 모든 남자가 선망하는 아름다운 여인 다니엘라(모니카 벨루치)에게 한 달에 10만 유로를 주는 대신 400만 유로의 복권 당첨금이 다 떨어질 때까지 같이 살자는 제안을 한다. 이 제안을 받아들인 다니엘라는 자신을 부드럽고 정중하게 대해주는 프랑수아에게 차츰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그러나 사실 다니엘라는 암흑가 보스인 샤를리(제라르 드빠르디유)의 여자. 그들의 관계를 알게 된 샤를리는 다니엘라를 사이에 두고 프랑수아와 흥정을 시작하는데...
영화 제목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처음에는 리스트에서 보게 되었다.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 라는 다소 어이없는 번역으로 개봉해서 소리 소문도 없이 2006년 여름 대한민국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다.
모니카벨루치의 관능적인 몸매와, 연극같은 구성, 그리고 희극같은 성격의 대화들의 연속에서 나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쉬운 불어를 배우들이 써대니 가끔씩 들리는 대화 문장의 구성 하나 하나가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 했던 것 같다.
창녀인 다니엘라(모니카벨루치)를, 프랑스와가 다가가서, 복권이 당첨되었다며 매달 10만유로씩 줄테니 같이 살자고 제안한다. 돈에 그녀는 이끌렸다가, 나중에는 그 돈이라는 것이, 아니 정확히는 로또에 당첨된 사실이 없다는 것을 알게된 후에도 프랑스와를 좋아하게 된다.
영화는 내내, 이런 메시지를 던져준다.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가.. 물론 때로는 허상을 보고 사랑할 수도 있지만, 결국 남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섬세한 손길, 따뜻한 마음 만이 남는다는 것을 은은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소 야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 영화지만 나름 프랑스 영화다운 재미를 보여주고,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프랑스와와 다니엘라가 맑은 날씨에 창문을 열어두고 식탁에 앉아 두손을 맞잡는 장면에서는, 창문 멀리 몽마르트언덕의 사크레쾨르성당이 보이고... 은은한 음악과 함께 두 사람이 쳐다보는데...
인생에서 Combien tu m'aimes? 라고 물었을때, 400만 유로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것 그것 자체가 행복인 것이다. 맑은 날씨의 푸르름처럼 말이다.
p.s. 오늘 누군가가 같이 퇴근하면서 이런 한탄을 하던데.. 왜 갑자기 내 인생의 목적이 돈이 되었지라는...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숙연해야 했었다. 집에 걸어오는 발걸음이 그렇게 무거울수가 없었다. 나도 인생에, 아니 다들 인생의 목적이 돈이 되어가는 세상인건가...
영화 초대권이 생겨서, 오래된 정원을 보러 갔다. 공짜 영화라면 또 가야하는게.. 2006년말부터 사실 우리나라 영화들 소재가 고갈되었다. 재미없다라는 말이 많기도 했거니와 나 역시 극장에 들어가서 본 영화들이, 너무나 재미없고 고리타분하고 점점 유치해지고 고리타분해져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조금씩 떨어져가는 1월 4일날 밤에 사람도 별로 없는 영화관에서, 오래된 정원을 보게 되었다.
뭐랄까.. 감정의 오버랩이라고 해야 하나? 붉은 기를 보며, 피가 들끓지 않으면 안된 것처럼 살았던 때가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전경들을 향해서 목소리가 찢어져라 외치며 덤벼들때도 있었던 것 같다.
그 시절 나보다 치열하게 싸우던 사람들 가운데는, 나중에 내가 변절하자 비난하던 사람도 있었고, 내가 차라리 열심히 공부해서 인권 변호사가 되자는 말에 '혁명만이 길이다'라고 외치던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 하나 둘, 지금은 시간이 흘렀는지 붉은 색은 와인색보다 더 옅어지고 이제는 하나둘 자기 살 길을 찾아가고, 그 시절 우리가 비난하던 그런 공안검사가 되어서 서슬퍼런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염정아의 말처럼, "인생도 길고, 역사도 길다"
내 한 몸 불질러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은, 차라리 그 목숨 버릴 각오로 더 질기게 살아간다면 더 크게 변화시키지 않을까?
염정아랑 잤던 학생처럼, 어쩌면 다른 길로 가서 "인권변호사"가 되는 게.. 더 인권을 위해서 좋은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더라..
영화제목 : '라디오 스타'
감 독 : 이준익 (왕의남자, 황산벌, 달마야 놀자, 아나키스트, 간첩 리철진)
주 연 : 안성기(박민수역), 박중훈(최곤역)
1. 큰 기대를 했지만, 조금은 아쉬웠던...
박중훈의 연기가 그다지 가슴에 와닿지 않아서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기대가 컸었던 것일까.. 다들 좋다던 라디오스타를 보고나서의 느낌은..
뭐랄까.... 큰 감동을 줄것이라 생각했던 선물상자에 알고보니 내가 알고있는 선물만
들어있어서 크게 웃어줄수 없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해야할까?
아무튼 영화 "타짜"를 보고 실망을 했었는데, 사람들이 "라디오 스타"는
재밌다고 하길래 봤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대표적 추석맞이 대작영화, 타짜와 라디오스타.. 흠..
내 주관적인 느낌은 10점 만점에, 6점과 7점 정도? ㅋ 너무 박한가?
2. 박민수도 그 나름의 인생에서는 주연인 것이다.
위의 사진은, 영화에서 내가 두번째로 맘에들어했던 장면이다.
사실 가장 맘에드는 장면은, 버스에서 눈물을 머금으며 김밥을 입에 구겨넣는
장면이었는데, 아쉽게도 그 사진은 구할수가 없었다.
안성기는 얼핏보면, 내가 가장 많이 따랐던 막내외삼촌과 닮았다.
내가 가장 닮고 싶어하며, 형처럼 그리고 스승처럼 따랐던 사람이 어느날 결혼을 했었다.
항상 나랑 놀아주고, 나를 생각해주던 사람에게, 사랑하는 가족이 생겼고
삼촌이라는 언덕에 비벼대던 난, 그 가족이라는 방해물이 매우 서운했었다.
아직도 내가 느꼈던 그 서운함이나 그 아쉬움은 이야기해본적 없지만서두,
삼촌이 본인의 가족에게 사랑을 베풀기 시작하면서 나와 이야기하는 시간이나,
내 생각을 들어주는 시간이 줄어든 것 같아 많이 아쉬웠던 적이 많았던것 같다. 후후...
(삼천포로 빠졌으니 이제 돌아와야지)
누군가의 글에서 본 것처럼, 항상 조연을 연기하는 조연 배우에게도,
본인의 삶 자체는 그 사람이 주연이듯이 누구나 삶의 주연을 사는 것이다.
안성기도, 박중훈의 매니저로 20년 가까이 살고
더 끔찍한 것은 박중훈 팬클럽 초대회장을 했던 여성과 결혼을 해서 살고
항상 박중훈의 우산이 되어주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안성기는
박중훈의 매니저로서의 주연을 살고 있는 것이다. 멋지다.
영화 중간에 내가 눈물을 흘린 이유는, 박중훈이나 안성기가 주는 우정이나 뭐 이런
감동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서 오는 진솔한 느낌이라고나 해야할까..
그런 것에서 오는 잔잔한 감동 때문이었다.
자신이 주연이 되는 이 삶의 한복판에서 가끔 다가오는 어려움의 파도나 고난은,
연극의 클라이막스쯤 된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나 싶다.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거면, 왜 굳이 힘들게 사는가.
남들과 조금이라도 달라야 내 삶의 Identification이 명확해지지 않겠는가 말이다.
3. 가끔은 말이다. 실패한 삶이 할 이야기가 많다는 걸 느낀다.
흔히 3142라고 불리는, 3학년때 1차붙고 4학년때 2차붙고 군대 면제받고 판사생활하다가,
지금은 부장판사하면서 사는 사람에게 인생의 낙은 어떤게 있을까.
가끔 내 삶의 방향이나 목표를 확정짓고 나면,
그 뒤에는 뭘하지 하는, 자문자답을 할 때가 있다.
정말 그 뒤에는 허탈해서 아니 뭘 할수 있나 싶다.
가끔은 실패해서 고통스럽고 어려워야 나중에 더 노력하지 않을까?
후후 패배자의 비겁한 자위라고? ㅋㅋ
그럴지도 모르지.. ^^
- 여수까지 잘 도착했는데 어제 노느라고 글 못썼다.
- 서울에서 여수까지 정확히 5시간 걸렸다. 버스로..
- 진주로 해서 돌아오는데 고속도로 안 막혔다.
- 버스가 앞차를 몇번이나 위협하더라.. 안비켜준다고.. 애가 타고 있었는데.. 쩝
- 추석이라고 여기저기서 문자 오는데, 모르는 번호가 많다. 이럴때는 정중히 씹는다. ㅡㅡ;
- 낼은 머리를 잘라야지..
- 올라갈 버스표도 구매해야겠군 ㅋㅋ
영화 『괴물』이 1000만 관객을 모을 것이라는 뉴스가 연일 떠오르고 있고,
어릴적 한강에서 괴물을 봤다는 것 하나로, 봉준호 감독은 또 하나의 히트 제조기가 되고 있다.
우리의 보수언론 조선일보는, 최공재라는 감독의 글을 빌어서
괴물의 흥행이 문화의 다양성을 주장하면서 스크린쿼터를 사수하는 한국 영화에 과연 도움이
될까하는 비난의 화살을 가열차게 쏴주었고, (기사 보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또 남들의 흥행열풍을 거스리지 못하고,
극장에서 표를 사서 보고야 말았다.
예고편이 항상 거대하고, 사람들의 평이 많으면, 은근한 기대감도 많은지라,
막상 영화가 100여분이 흐르고나서는, 지겹고 느슨하다라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스토리 전개의 느슨함과 지루함은, 마치 사람들이 반지의 제왕을 극찬할때
나 혼자 하품을 했던 그 지루함과 비슷한 그것이었다. 다른 무언가, 새로운 것이
바로 바로 자극이 오길 바라는, 나같은 자극세대에게는 그런 지루함과 느슨함은
영화가 재미없다라는 결론으로 바로 치닫기 때문이다. (저런)
Anyway, 영화가 재미없고 있고를 떠나서,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한강에서 매점을 하는 서민,
아니 나같은 필부에게는 경찰도, 군인도, 언론도, 심지어 시민단체마저도
머나먼 구원의 손길이라는 것이다.
영화 장면에서 나오는 "경찰관의 반말 응대 장면"이나, "외국인 의사의 뇌 바이러스 강조장면"에서
우리네 서민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대사로 표현되는데, 너무나 가슴이 아리던데..
과연 1000만 관객 가운데 그런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쉬울 뿐이다.
자괴감과 비참함을 느끼면서 영화를 봐야했고,
봉준호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그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서러움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느껴졌다.